발걸음/산행기록

제 1212차 산행 엄광산

갈파람의별 2016. 10. 8. 20:39

 구봉산, 엄광산[龜蜂山 408m,  嚴光山504m]

 

위치 : 부산 서구, 부산진구, 사상구

일 시 : 2016. 10. 08(토)  나홀로

날씨 : 흐리고비

산행코스 : 경남고교정문~돌담위체육시설~꽃동산약수터~구봉봉수대(구봉산)~안부쉼터~9부능선길~엄광산~

                꽃동네~서구종단숲길~대티고개~박씨무덤~정원사

 

특징, 볼거리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있는 산.|[명칭 유래] ‘구봉(龜峰)’이란 지명은 산의 형상이 거북이처럼 엎드려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고, 『해동 지도(海東地圖)』[1750]에서 구봉산의 지명을 처음 확인할 수 있다. [자연 환경]

구봉산엄광산[구 고원견산]과 구덕산으로 이어지는 부산항의 등줄 산맥의 산정(山頂) 중 하나이다.

 

정상에 있는 구봉 봉수대는 1725년(영조 1)에 석성산[지금의 서구 천마산]에서 옮겨진 봉수대이다.

부산의 주요 봉수대는 해안에 설치된 전형적인 연변 봉수들로서, 5개의 직봉 가운데 제2경로인 동래~한성 간 봉수망의 직봉 및

간봉에 해당한다. 구봉 봉수는 다대포의 응봉 봉수에서 황령산 봉수로 연결하는 봉수로, 부산포 수군의 전초 기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조선 시대 부산진(釜山鎭)에서 관할하였고, 도별장(都別將) 1인, 별장(別將) 6인, 봉군(烽軍) 100명을 두었다.


엄광산은 쓰시마 섬까지 바라볼 수 있다고 하여 고원견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95년 일제 강점기의 잔재인 고원견산이라는

지명은 우리 지명찾기 사업으로 다시 엄광산이 되었다. [자연 환경] 엄광산은 금정산맥의 말단부 능선 상에 솟아 있는 산이다.

남서쪽으로 구덕산과 승학산이 있고, 남동쪽으로는 구봉산으로 연결된다


엄광산금정산맥의 말단부 능선 상에 솟아 있는 산이다. 남서쪽으로 구덕산승학산이 있고, 남동쪽으로는 구봉산으로 연결된다.  해발 고도 503.9m의 엄광산은 부산광역시 서구와 부산진구 그리고 동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엄광산 주변에는  동의대학교, 인제대학교, 동서대학교, 경남정보대학이 자리하고 있으며, 정상에서 바라본 부산항의 전망이 좋기로 이름나 있다. 또한 산림이 울창하여 자연 공원으로서 부산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중앙공원 충혼탑

중앙공원(구 대청공원)은 중구 영주동 산 4번지 일대로 부산시내서는 가장 최근에 개발된 시민공원이다. 한국전쟁 때 전국 곳곳

에서 몰려들었던 피난민들의 판자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부산시에서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가꾸기 위해 1970년 9월 2일 '대

청공원'이라는 명칭으로 공원구역 고시, 1982년 공원 조성계획이 고시되고, 1983년 9월7일 공원조성이 완료되었다. 1986년 공원

의 명칭이 '중앙공원'으로 변경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앙공원의 충혼탑 건립이전에는 용두산공원에 충혼탑이 있었으며 부산출신 선열들의 영령 7,794위가 봉안되어 있었다. 중앙공

원의 충혼탑 건립은 '부산직할시 충혼탑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추진일정을 살펴보면, 1982년 9월 12일 본 공사가 착공되어 1983년 9월 11일 준공되기까지 약 1년간의 공사끝에 웅대한 위용을

드러내었다.

이 충혼탑에는 겨레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부산지역 출신 선열들의 영령을 모시게 되었다. 현재 충혼탑에 봉안되어 있는 영령

들은 총 9,427위중 육군 7,316위, 해군 352위, 공군 56위, 경찰 539위, 군속 30위, 근로자동원 127위, 애국단체 99위, 기타 294위이

며, 1995년 3월 부산 편입지역 기장군출신 585위, 신규 30위가 봉안되어 있다. 충혼탑의 규모는 탑의 높이가 70m중 탑신이 39m,

상륜부가 31m이며, 영령실 30평, 광장 840평, 연못 45㎡, 양수장 1개소, 충혼비 1기, 상징물 1기로 구성되어 있다. 탑의 설계는

김중업씨가 맡았고, 글은 이주홍씨가 짓고, 글씨는 한형식씨, 명각에는 장상만씨가 담당하였다. 탑에는 다음과 같은 충혼탑문이

수록되어 있다

부산 민주항쟁기념관

부산 민주항쟁기념관은 중구 영주동 산 10번지 일대(중앙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지면적 20.337㎡, 연면적 5,278㎡에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로 부산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과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부산민주공원 조성 범시민추진위원회가 주체가

되어 조성된 공원이다.

기념관의 기본구성 방향은 첫째, 민주화, 프로젝트로서의 전시내용을 구성하는 것이다. 민주항쟁의 과거에 대한 재조명과 이를

현대적·미래적으로 계승·완성하는 지속적·실천적 개념으로서의 민주화프로젝트를 내용의 축으로 상정하며, 부산민주항쟁을 중

심으로 한국·세계의 민주항쟁의 진행 모습을 기억, 재조명하는 사건적 축과 삶과 생태·환경 등의 생활 문화적 축의 연계 표현을

통해 민주주의의 기억과 재해석, 일상·실천 속으로의 확장을 유도한다.

또한 과거의 기록·해석에서 출발해 시간(과거, 현재, 미래)과 공간(부산·한국·세계)을 초월해 인간·기술·자연이 공생하는 '민주

주의의 재해석'을 국내외적으로 이슈로 제시한다. 둘째, 문화예술의 민주주의화와 참여 민주주의의 문화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다. 민주항쟁의 문화예술적 표현을 통해 지배계급 위주의 문화예술의 민주주의화를 이끌어내고 수용자 참여적인 전시공학을

통해 추상적 개념의 참여 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셋째, 전시대상의 시간과 공간으로 공간의 연속성을 중시하면서 4.19에서 현재까지 부산의 40여년을 주요시간 대상으로 설정해

부산을 중심적으로 다루면서 전국·세계와 현재, 미래를 인간의 자유의지, 압제에 대한 저항의지란 보편적 가치에서 표현해 민주

주의적 가치를 적극 제시한다. 이상 3가지를 기본방향으로 해서 조성되었다.

부산민주공원의 주요시설로는 상징조형물인 민주의 횃불, 전시실 중극장, 소극장, 야외극장 등을 들 수 있다. 먼저「민주의 횃

불」의 조형적 의미는 대략 다음과 같다. 원통형 공간에 유입되는 빛에 투과되면서 은빛으로 반짝이는 역삼각형의 떠있는 구조

물은, 비일상적이고 이탈적인 현상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며, 내부와 외부, 관통과 차단이 서로 맞물리면서 새로운 조형예술의

가능성을 추구한다.

상징적 의미로는 '민주'라는 말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 인내를 통하여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조형물은

내부에 수많은 반사 재질의 조각들을 설치하여 이름 없는 민주의 별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내부와 외부는 죽은자와 산자, 이상과 현실, 안과 밖이 통일되어 '민주'의 이름으로 하나의 공간에서 승화되는 것을 보여주며, 부산의 힘이 무한의 시공간을 향
해 끝없이 비상하는 것을 상징한다. 8개의 지추는 8괘와 각 방위를 의미하고 자연과 우주의 모든 기운이 서로 보완하고 의지하여

사방팔방으로 울려퍼지는 민주화 운동의 기상을 나타낸다. 가운데 제단을 중심 축으로서 세 꼭짓점에 설치되어 있는 써치라이트

는 팔괘에 둘러싸인 삼태극을 뜻한다.

상설전시실의 구성은 민주의문, 회상의 숲, 부산의 함성, 확산의 방, 공공성의 파괴와 생성, 년대의 공간, 영상마당, 추모의 공간,

희망의 빛으로 꾸며져 있어 부산지역의 민주화운동 전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산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중극장」은 학술행사, 강연회와 춤, 노래, 연극, 영화 등의 종합적인 장르의 공연이 가능한 문화공간이며, 가변

형으로 활용도를 다각화시킨 실험적 무대인 「소극장」은 연극, 마당춤 등의 공연이 가능한 공간이며, 소규모회의, 강연회, 영화

상영 등의 다양한 행사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극장과 소극장에는 오디오 시스템, 비디오 시스템, 무대조명 및 장치를 갖추고 있으며, 「야외극장」에서는 젊은이들

의 각종공연, 야외영화상영, 이벤트 등을 펼칠 수 있다. 그 외에도 야외광장, 수목원, 휴식공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