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46차 산행 울산의산 남암산과 문수산
남암산[(南巖山 544m], 문수산[文殊山 600m], 문수봉[(文殊峰 404m], 영축산[靈鷲山 352m]
위치 :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일시 : 2025. 2. 24.(월요일) 솔뫼 친구와 둘이서
날씨 : 맑은 날
산행코스 : 울산예고~한솔그린빌아파트~남암산~문수암장~문수암~문수산~문수봉~영축산~율리농협
특징, 볼거리
문수산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읍과 삼동면 범서읍에
걸쳐있는 산
일명 청량산(淸凉山)으로도 부른다
신 증동국여지승람 (울산)에는
문수산은 고을 서쪽 25리에 있다
라는 내용과 망해사·청송사 모두 문수산에 있다
라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울산 시민들이 많이 찾는 산이며
남서쪽 산록에는 신라 때에 세웠다는 문수사가 있다
산의 남동쪽에는 망해사지와 청송사지가 남아 있다
대동여지도에 기록된 문수산
문수보살에서 따온 이름이며
산 정상 부근의 문수사도 마찬가지다
울산에는 여기 말고도 불교에서 비롯된
지명이 많은데 이는 신라의 외항으로서
불교를 받아들이기 쉬웠던 특징으로
경주시와 함께 신라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남구에 있는 울산문수축구경기장과
울산문수야구장에 쓰인 문수의 유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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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암산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동쪽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문수산과 산맥을 같이 하고 있어
마치 같은 산의 형제봉 같다
문수산과 남암산만이 중심에 우뚝 솟아 있고
남쪽으로는 노방산·큰비알산·작은 서산 등
해발 300m 이하의 산지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대부분 낮은 평야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남쪽의 작은 서산과의 사이에는
대복천이 흐르고 양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회야강으로 유입한다
남암산이라는 지명은 옛날 남암이라는 절이 있어
부르게 되었다
또한 남암산을 김신기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 범공이
신라가 망하자 이곳 남암산으로 들어와
김신암이라는 절을 짓고 머물렀다는 곳이 있어
붙은 지명이라고 한다
망해사지
쓸쓸한 부도탑 2기만 남아 있는 망해사지
망해사지는 신라 49대 헌강왕 5년(879)
창건된 고찰로 헌강왕이 민정을 살펴보니
나라가 태평하여 풍악과 노랫소리가
끊이질 않아 개운포를 돌아보고 돌아가는
도중에 잠시 물가에서 쉬는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더니
이내 지척을 분별하기 힘들자
왕은 일관에게 어쩌된 조화인지를 묻자
일관이 말하길 동해용의 조화니
필시 좋은 징조라 하여 근처에 용을 위하여
절을 세우도록 하자 곧 안개가 흩어지고
동해용이 아들 입곱을 데리고 임금에게 다가와
덕을 찬양하고 춤을 추었다 전한다
망해사지 폐허가 된 터에 주춧돌과
보물 제173호 석조부도 2기가 전해진다
발견 당시 동쪽 부도탑이 파손된 상태였는데
1960년 11월 복원하였다
탑은 통일신라 후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수사
신라 때 창건하였으나 창건역사는 알 수가 없다
조선 정조 23년(1799) 편찬된
범우고에 절 이름이 수록되어 있어
사찰의 역사는 제법 된 것으로 추정되며
기록에 의하면 문수산은 신 증동국여지승람에
청량산 영축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문수보살을 모신 것으로 전해지며
예부터 많은 불자들이 찾아와 기도하고
참선을 하던 명소로 알려져 있다
사찰 내부에는 다양한 전각과 불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대웅전과 석탑은
문수사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사찰에 관한 무기설화를 보면
경순왕은 백척간두에 선 나라의 장래를
영축산 문수대성의 계시를 받아 결정키로 하고
태자와 둘째 왕자를 거느리고
하곡현의 영축산으로 찾아간다
먼저 태화에 이르러 참배하고 길을 나서는데
중도에 한 동자승을 만나게 된다.
동자승은 왕을 마중 나왔다며 길을 안내하였지만
태화강을 건너자 사라져 버려
왕은 사라진 동자승이 문수보살임을 느끼고
하늘이 이미 나를 져 버리는구나 탄식하니
왕은 발길을 돌려 환궁하였는데
나라는 점점 쇠퇴하여 고려 태조에게
항복하기를 꾀하였다
왕이 탄식한 자리를 헐수정이라 하고
동자승이 자취를 감춘 곳을 무거라 하였다고 한다
청송사지
울주 청송사지 삼층석탑은 보물 제382호로
기단 일부가 파손된 채 묻혀 있던 것을
1962년 해체 복구한 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이다
탑에서는 청동사리함이 발견되었는데
그 속에서 청동여래입상 1점 유리 수정 옥 등
30여 점이 수습되었다
청송사지 내 삼층석탑 앞에 있는 부도는
청송사지 부도 중에서 유일하게
전해지는 것으로 청신녀 부도로
우바이 백화당 낭옥 부도이다
1990년 한 수집상에 의해 전라도까지
유출된 것을 지안스님이 김득곤 엄원영 등
마을 주민과 함께 노력하여
다시 찾아온 것으로 본래 부도골
눈둑에 묻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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