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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산의 에피소드(모개 作)

갈파람의별 2007. 6. 17. 22:52
#1. 버스 안에서
버스 안의 분위기가 싱그럽다. 새롭게 동행하는 두 분이 계셨기 때문인 것 같다. 한 분은 김선재님의 게스트, 또 한 분은 이날 처음 참석했다는 분이다. 그리고 설산님도 동행하셨다. 설산님이 누구신가? 솔방울님의 친구로 금정산 종주 때 종주하는지도 모르고 따라왔다는 분이다. 그런데 그 다음날 신기하게도 몸이 개운하더란다. 그래서 산행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회원으로 가입하고, 이 날은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단다.
여기에 더하여 김선재님의 설악산 대청봉 '정복' 이야기가 이어져 모두들 웃음꽃이 만발했다. 다만 기념품을 사왔는데 봉투에 넣어놓고 그냥 두고 왔단다. 그래도 아무도 탓하는 이 없다. '살아서' 돌아온 것만도 다행이라며 격려한다. 대형버스에 가득 타고 떠나는 산행은 아니지만, 오붓하게 서로를 느끼면서 떠나는 이런 즐거움은 쉽게 만날 수 없으리라.

#2. 수도산 초입에서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산딸기다. 빨갛게 익은 산딸기. 알도 굵다. 길가에 아직도 산딸기가 그대로 달려 있다니? 내가 자주 가는 황령산에도 산딸기가 많지만, 제대로 익은 것을 구경하기는 힘들다. 등산객들이 제대로 익도록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차마 따먹기 아까울 정도로 산딸기가 예쁘게 익었다. 어떤 것은 포도알만 하다. 줄지어 열린 산딸기 사진(이 사진은 야생화 사랑에 올려놓았음)을 찍고서 조금 오르니 몇몇 분이 길가 나무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따먹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오디'다! 새까맣게 익은 오디를 따 입에 넣으니 달콤한 맛이 나를 유혹한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으니 구태여 누군지 공개하지는 않겠다. 다만 주연님, 둥근세상님, 희망님, 그리고 게스트님이라는 사실만 밝히고자 한다.
수도산은 초입부터 우리를 반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오를 높이는 생각지도 않고 눈과 입의 달콤함에 먼저 빠진 것이다.

#3. 점심시간의 에피소드
본래의 계획과는 거꾸로 산행을 시작했다. 그래서 대덕청소년야영장에서 출발, 추량계곡을 따라 올랐다. 혼자서는 무서움을 느낄 정도로 수풀이 무성한 산길이었다. 한 고비를 넘고서야 조금 시야가 트였다. 버스에서 보낸 시간이 3시간 30분 가까이. 11시 30분께에야 산행을 시작했으니 오후 1시쯤되니 배가 고플 수밖에. 그래도 중간에 두어번 몇몇 분이 넉넉하게 준비해온 간식으로 잔치를 한 덕분에 1시까지 견딘 것이다.
신선봉을 앞두고서 점심 자리를 폈다. 그런데 버스에서부터 짐이 많아 솔방울님의 배낭에까지 짐을 나눠 넣었던 김선재님의 보따리가 펼쳐지자 모두들 눈이 둥그레졌다. 김선재님과 게스트님의 배낭이 마치 요술주머니나 되는듯, 먹을 것이 끝없이 나왔다. 그런데 사연이 있단다.
게스트님은 김선재님의 누나였다. 여기서 누나라고 하면 재미가 없다. '누부'라고 해야 맛깔이 난다. 누부 왈, "선재가 항상 산에 와서 얻어먹기만 했다며, 누부가 같이 가니까 먹을 것을 많이 준비하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이렇게 준비해 왔다"는 게 아닌가. 우선 족발을 살펴보자. 도시락이 3개다. 그런데 보통 족발이 아니다. 쫄깃쫄깃한 껍질 부분만 담아온 것이 2개, 나머지 하나는 뼈가 붙은 부분이다. 모두들 너무 맛있다고 탄성이다.
반찬도 6가지다. 밥은 큰 통 2개. 김선재님이 하도 그래서 처음에는 3개를 준비하려다가 2개만 싸왔단다. 여기에 야콘주 1병. 뭐 체지방 감소에 최고라나? 덕분에 내가 준비해 간 매실주는 '기가 팍 죽어' 열지도 못했다. 어쨌든 모두들 든든하게 먹었다. 그 외에도 있었는데 기억도 못하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한 가지! 앞으로 누부는 반드시 참석할 것을 강조하는 님들이 많았다. 덕분에 많은 준비를 하라고 독촉한 김선재님은 '아쉽게도' 뒷전으로 밀렸다.

#4. 정상에 오르다
평소에 비해 많이 먹은데다, 바로 오르막으로 이어져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째, 올라야지. 신선봉(1232m)도 올랐는지 모르게 지나쳤다. 표지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올랐을까. 빽빽하던 수풀에서 벗어나 시야가 트였다. 그런데 보이는 것은 운무(雲霧)뿐. 갑자기 눈 앞에 제법 높다란 돌탑이 보인다. 그 아래 조그마한 표지석이 있다. 들여다 보니 '수도산'이라고 새겨져 있다. 정상이다! 1317m의 수도산이다. 1300미터 이상되는 산이라 이름값을 한다는 느낌이 드는 산행이었다.
기념촬영을 했다. 그런데 뒤에 사진을 확인하니 하늘사랑님은 눈을 감았다. 우짜노. 그래도 다행인 게 운무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있어 그나마 만회가 된 듯하다. 운무가 계속 밀려든다. 한편으로는 높은 산에 올랐다는 흐뭇함, 또 한편으로는 너무 짙은 운무는 산행에 어려움을 주는데 하는 걱정이 교차한다.

#5. 하산길의 에피소드
힘들던 오르막은 이제 아듀. 하산이다! 마왕님 그 뒤에 하빈님, 그 뒤에 푸른솔님이 출발하고, 나머지 11명이 뒤따랐다. 그런데 하산길도 만만찮다. 마치 능선길 같다. 한참을 가다가 갈림길을 만났다. 우리는 당연히 청암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라 믿었다. 또 출발. 한참을 가다가 잠시 휴식. 무전이 되지 않아 전화로 마왕님과 통화한 갈파람님의 폭탄선언. "우리 길 잘못 들었습니다."
수도산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다른 등산객과 섞이면서 나머지 11명이 길을 잘못 든 것이다. 앞선 세 분은 제대로 길을 가고 있었고. 리턴! 속으로 투덜투덜 하는데, 후미조 김선재님 한마디! "좋게 생각합시다. 덕분에 30분 더 걷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그게 말이 되느냐고 했지만, 속으로는 너무 고마웠다. 마음 쓰임새가 점심 반찬을 푸짐하게 준비해온 것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 '우리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이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돌아온 갈림길에서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수도암 입구쪽으로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갈파람님 선두, 김선재님 후미대장, 솔방울님 중간대장으로 하여 수도암으로 하산.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계곡물이 있었다. 계곡물이 반가운 이유는 '알탕'을 할 수 있기 때문. 족탕을 하는 님과 알탕을 하는 님으로 나눠졌다.
비로소 하늘별님의 얼굴에 희미하나마 여유가 보인다. 그 이유는 하늘별님의 후기에 나와 있으니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6. 돌아오는 길
마왕님, 하빈님, 푸른솔님을 태운 버스가 수도암 입구로 우리를 태우러 왔다. 우리는 반갑게 재회했다.
이대로 부산으로 가면 너무 늦겠다 싶어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한참을 가다 따로국밥집에 들어갔다. 소주 한 잔에 얼큰한 국물이 끝내줬다. 여기에다 선지도 뚝뚝 잘라 넣어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 한번의 역전극이 펼쳐졌다. 푸짐한 점심으로 주가를 올리려 했던 김선재님. 그런데 모든 님의 관심은 누부에게 쏠려 있다. 누부를 모시고 오지 않으면 김선재님도 올 생각하지 마라는 말에서부터, 김선재님은 안와도 누부는 꼭 참석해야 한다는 둥. 결론적으로 한 가지는 성공했다. 김선재님은 좋은 누부가 계시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인식시켰다는 점이다.
마무리하면서 한마디! 하늘별님, 멀지 않은 날에 얼굴 한번 보입시더, 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