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및 산 이야기/근교 의 산

다대포 몰운대

갈파람의별 2010. 8. 19. 10:32

 일  시 : 2010년 8월14일 (토요일)  날  씨 :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었던날

다대포 몰운대(沒雲臺) : 시도기념물  제27호 (사하구),  

몰운대는 낙동강 하구의 가장 남쪽에서 바다와 맞닿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16세기까지는 몰운대라는 섬이 있었으나,

그후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흙과 모래가 쌓여 다대포와 연결되어 육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일대는 지형상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안개와 구름에 잠겨서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몰운대(沒雲臺)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다대포와 몰운대는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로서 임진왜란(1592) 때에는 격전이 벌어졌으며, 이순신의 선봉장이었던

충장공 정운도 이 앞 바다에서 500여 척의 왜선을 맞아 힘껏 싸우다가 순국하는 등 역사의 한 장면이 연출된 곳이기도 하다.

정운의 순국을 기리기 위한 사당과 비석이 있는 이 곳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경승지이다

 

낙조전망대 가는길...

다대포 해수욕장 전경

 

 

 

 

 

낙조전망대 가는길

다대포 '낙조전망대' 해넘이 감상 명소 일품
전국서 풍경감상·사진촬영위해 몰려들어

부산 사하구 다대포 해변은 낙조(일몰, 해넘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백사장이나 몰운대유원지에서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풍경은 가히 압권이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이나 사진작가들이 명품 낙조 풍경을 감상하거나 사진에 담으려고 몰려든다.

다대포 백사장 동쪽 끝자락에 들어선 낙조전망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다대포는 부산이 자랑할 만한 명품 관광지라고 할 수 있다.

빼어난 낙조 풍경을 자랑하는 다대포에 느긋하게 낙조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장소가 들어서고 있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하구청에서 5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몰운대유원지 서쪽 해안, 즉 백사장 동쪽 끝 부분에 나무로 된 낙조전망대를 설치하고 있어서

앞으로 다대포를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전망이다. 이와 더불어 몰운대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낙조전망대까지

나무로 된 진입로를 설치하고 의자도 만들어 이용자들은 마음 편하게 낙조를 감상할 수 있게 꾸민다.

 백사장 풍경. 늘 다대포를 찾는 이가 많다. 
두루 알다시피 몰운대유원지는 해운대, 태종대와 더불어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로서 지난 1972년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됐다.

몰운대에는 다대포객사, 정운공순의비 등 문화유적지가 있어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몰운대 낙조전망대가 완공되면 지난해에 개장한 다대포 꿈의 낙조분수와 더불어 다대포를 찾는 이들에게 새로운 추억거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노을정에서 낙조에 관한 여러 가지 시를 감상하거나 낙조전망대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해넘이 풍경을 즐기다가

꿈의 낙조분수가 만드는 화려한 쇼를 보면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다대포는 이제 명실상부한 서부산의 중심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어서 사하 지역주민은 물론 부산시민의 남다른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사시사철 관광객이 찾는 다대포는 이제 부산을 찾는 사람은 반드시 한 번 들러야 할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다대포가 명품 관광지로 널리 이름을 떨치도록 관계당국의 지속적인 관리와 애정이 필요하다. (2010.3.14.국제신문/박정도 시민기자)

 

 

 

 

 

다대포 객사(多大逋 客舍)  :시도유형문화재  제3호 

객사는 고려·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였던 것으로 관사 또는 객관이라고도 한다. 객사는 고려 전기부터 있었으며
외국 사신이 방문했을 때 객사에 묵으면서 연회도 가졌다. 조선시대에는 객사에 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예(망궐례)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사신의 숙소로도 이용하였다.

이 객사를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조선 순조 25년(1825)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다대초등학교 안에 있던 것을 1970년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벽이 없이 기둥으로만 이루어진
이 객사는 일반적으로 중앙의 정당과 좌우 익실로 이루어진 다른 객사들과는 달리 정당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1980년 기둥과 마루를 보수하고 단청공사와 현판을 설치하였다.
옛부터 다대포는 왜구를 막기 위한 군사요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부산진과 함께 다른 진보다
더욱 중요시되었다.

다대포 객사는 이 지역에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조선시대 객사건축물이다.
드리던 곳이며 또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하였다. 정당(正堂)과 그 좌우에 익실(翼室)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이 객사는 정당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대포는 옛부터 왜구(倭寇)를 막기 위한 군사(軍事) 요지로,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에는 경상좌도(慶尙左道) 7진(七鎭)의 하나가
되었으며 부산진(釜山鎭)과 함께 다른 진보다 더 중요시 되었던 곳이다. 이 건물의 초창(初創)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된 후 수차 중건(重建)되다가 순조(純祖) 25년(1825)에 중수(重修)된 것으로 5량가구(五樑架構)의 팔작집이다.
원래는 다대국민학교(多大國民學校) 구내(構內)(구(舊) 첨사영(僉使營))에 있던 것을 197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몰운대의 비경

 

 

 

 

 

 

 

화손대 가는길

 

산짐승들 물먹는장소로 빗물을 모아두는곳

 

다대포 내항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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