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 높이 1.82m.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 팔공산 동봉의 석불입상에서 서쪽에 솟아 있는 비로봉의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새겨져 있는 약사여래좌상이다.
이 불상은 연화대좌 위에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아 있다. 그리고 두광(頭光 : 부처나 보상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과 신광(身光 :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
그리고 불꽃무늬의 거신광(擧身光 : 부처나 보살의 온몸에서 나오는 빛)이 함께 갖추어진 완전한 불상이다. 현재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대좌 부분에는 이끼가
가득하여 조식(彫飾 : 잘 다듬어 꾸밈.)을 잘 알아보기는 힘들다.
불상의 머리는 소발(素髮)이고 큼직한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높게 솟아 있다. 얼굴은 알맞게 살이 쪄 있으며 두 눈은
반개(半開)하였고 미간에는 백호(白毫 :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가 없다.
코는 오뚝하며 인중(人中)은 뚜렷하고 입은 좀 작게 표현되었으며, 엷은 미소를 띄고 있다. 두 귀는 어깨까지 닿을 듯 길게 표현되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어깨는 당당하나 경직되었고 가슴은 편평하여 양감이 표현되지 않았다.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우견 편단(右肩偏袒 : 오른쪽 어깨가 드러남.)으로 옷주름이 유려하고도 규칙적이다. 특히 왼쪽 어깨 위에서 반전되어
로 넘어가는 옷깃의 표현은 통일신라시대의 우견 편단을 한 불좌상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경주남산 칠불암 마애삼존불의 본존상과 비교될 수도 있지만 이
불상에서는 보다 더 경직되고 도식화되었다.
오른손은 외장(外掌 : 손바닥을 바깥으로 함.)한 채 곧게 내려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놓았다. 손금이나 다섯 손가락 마디마디의 표현이 뚜렷하다. 손목에도 2조의 음각선
이 짙게 그어져 있다. 팔찌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손목 마디를 표현한 것으로 짐작된다. 왼손은 배 앞에서 약호를 들고 있으며 손가락이 유난히 길게 표현되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 그리고 거신광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 조각이 정교하고 화려하다. 머리에는 큼직한 단판 육엽(單瓣六葉 : 여섯 잎의 홑꽃잎)의 연꽃무늬를 새기고,
그 둘레에 2조의 테두리선을 돌렸다. 그 바깥으로 다시 2조선을 돌렸다. 그 사이에는 덩굴무늬로 장식하였다. 신광 역시 두광과 같은 모습이고 두·신광 주위에는 대좌
에서 두광 정상까지 불꽃무늬로 장식했다.
대좌는 앙련(仰蓮 :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과 복련(覆蓮 :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연화대좌이다. 무릎 밑의 단판 앙련은 이중으로 겹쳐져
있고 그 밑으로 복련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앙련 중앙의 큰 연꽃잎 안에는 귀꽃 모양의 문양을 새겨 넣어 장식성을 더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연화좌 밑으로 목은 길게 빼고 대좌를 받치고 있는 용의 형상이다. 두 마리의 용은 서로의 몸을 엇갈려서 대좌를 떠받들고 있듯이 표현되었다.
입을 딱 벌리고 있으며 눈은 부리부리하다.
이처럼 불상의 대좌에 용두를 조각한 것은 희귀한 예이다. 기록상으로는 최치원(崔致遠)의 사산비(四山碑)인 숭복사(崇福寺) 비명에 “2층 불전의 용으로 된 대좌위에
노사나불을 모셨다.”라는 대목이 있어 이러한 대좌가 숭복사 불상이 만들어진 9세기 이후에는 제작되어졌으리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조각이 우수하고 구도도 안정감이 있다. 하지만 평면적인 신체의 구성이나 화려한 장식성으로 미루어 조성시기는 통일신라 말기로 추정된다.
팔공산동봉석조약사여래입상(八公山東峰石造藥師如來立像)
전체 높이 6m.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 해발 1,155m의 고지(高地)에 위치하고 있는 이 불상은 거대한 화강암의 서쪽 면에 거의 원각에
가까운 고부조(高浮彫 : 높은 돋을새김)로 조각되어 있다. 불상이 새겨진 바위 자체가 거대한 광배의 역할을 하며 머리 주위로는 두광(頭光 :
부처나 보상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의 흔적이 남아 있다.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넓고 편평한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를 가졌다. 반쯤 뜬 눈은 가늘고
길게 표현되었는데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두 볼은 살이 찐 편이고 입가엔 미소를 띠고 있어 온화하고 자비스러운 불심을 느낄 수 있다.
신체에 비해 얼굴은 좀 크게 표현되었다. 거대한 불상을 올려다보며 예불을 드리는 예배자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된다.
귀는 길어 어깨에 닿을 듯하며, 목은 너무 짧아서 삼도(三道)의 표현이 뚜렷치 않다. 이 불상은 양손과 발이 모두 신체에 비해서 지나칠 정도로
크게 표현되었다. 오른팔은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서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였지만 조각 수법은 고르지 못하다. 왼팔은 가슴 위로 들어
올려 외장(外掌 : 손바닥을 바깥으로 함)했다. 엄지와 장지를 맞대어 지물(持物)을 가진 듯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이고 옷자락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뜨렸다. 단순한 호선(弧線 : 활등
모양으로 굽은 선)형 옷주름만이 표현되었다. 법의 밑으로는 군의(裙衣)의 표현이 희미하고 직립한 두 발끝과 발가락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좌·우측 옷자락도 양팔에 걸쳐 넓게 늘어뜨려졌는데 마치 도포 자락을 연상케 한다.
이 불상은 손과 발에서 기형적 조법이 나타나기는 하나 거대한 입상에 잘 조화되어 있는 옷주름이나 얼굴 모습 등의 조각 솜씨로 보아 경산시
의 관봉석조여래좌상(冠峰石造如來坐像, 보물 제431호)과 양식적으로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