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및 산 이야기/창원 의 산

폭염경보속의 굴암산 산행

갈파람의별 2017. 8. 6. 22:35

굴암산 을 처음 찾았을때가 생각난다

28년전 쯤 겨울..

겨울 산불예방 기간 입산금지 감시하시는분과 30여분 말다툼 하다가 ...

결국 옆으로 돌아 한시간정도 산을 헤메이다  등로를 찿아 올라갔던 기억...

이후 굴암산의 매력(?)에 빠져서 인지 여러번 산행을 하게 되었다

젊었던 여름날 산과사람들 님들과 굴암산산행후 대장동계곡에서 한참을 즐겼던 때

산사처 님들과 하산길을 잘못 선택해 율하리로 하산하여 버스타기 힘들었던 산행

누구나 한번쯤 있겠지만 힘들었을때 혼자 올라 장유 신안계곡에서 한참을 울었던 ..쩝...

그리고 최근에는 고교동기들과 함께했었던 .....굴암산을 다시 오른다

8월5일 토요일 오전 10시에 섭씨35도를 기록 폭염경보 가 발령 .... 힘든 산행이 예상되었다


 

대장동 마을입구에서 산행 준비를 하며 바라본 굴암산 전경

 

성흥사 입구 등산안내도

이번산행은 원점회기 산행이라 성흥사참배는 하산을 하면서 하기로 하고

곧장 산길로 올라간다

 

대장동계곡 워낙계곡이 깊어 수량이 풍부한 곳인데

영남동부 마른장마와 가뭄으로 여기도 계곡물이 말라있다

 

대장동계곡의 명품나무 보호수인 느티나무앞에서 인증삿을 하고 ㅎㅎㅎ..

 

 

 

느티나무 뒤에 성흥사가 보인다

 

들머리 이정표

여기서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약100여m올라가면 다시 갈림길이 ... 굴암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왼쪽길은 나중에 이곳으로 다시 내려오는길

 

편백림속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가파른 길이 시작 된다

 

습도높은날이라 무리하지 않으려 천천히 올라간다

바위군을 왼쪽으로끼고 비탈길을 계속올라....

굴암산은 낮은 산이지만 경사가 만만치 않기에 비교적 힘들게 올라가야 한다

 

좀 위험한 코스

바위를 타고 올라 바위전망대에서 진해앞바다를 내려본다

왼쪽 가덕도와 오른쪽 멀리 거제도가 보인다

 

바위를 타고 올라오고 있는 맛동산님

 

우측으로 보이는 화산과 멀리 불모산의 기지국

 

불모산 왼쪽으로 웅산과 시루봉이 보인다

 

선바위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주능선길...

오름은 끝이라 더위와의 싸움도 끝이 난다

 

주능선길 정상까지 200m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

 

ㅎㅎ 정상에서 하트...

 

정상에서 내려 보이는 조망 을 배경으로

 

다시 화산방향으로 되돌아 간다

 

가적도와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를 찍었는데 사진에는 보이질 않는다 에구에구....

 

화산정상 군기지와 불모산정상 중계탑과 왼쪽능선을따라 내려가면 확연히 보이는 웅산

 

능선길 간간이 바위전망대가 조망의 즐거움도 주지만 숲길 불어주는 바람도 오늘따라 너무 좋다

 

 

 

 

명품소나무에서..

 

 

헬기장을 지나 조금더 진행하면..

 

우리나라 산에서만 간혹 볼수있는 풍경이다

화산은 군사기지로 사용하고 있어 더이상 오를수가 없다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고 철조망을 끼고 하산을 한다

 

 

 

이정표를 만나면 성흥사 방향으로 하산

 

전나무숲을 지나 조금더 내려가면

 

편백숲을 지난다

 

대장동계곡 상류 그래도 물이 졸졸 흐르고는 있다

 

합류지점 약 500여m남겨두고 계곡길로 들어가 ..알탕을 할수 있을까 걱정은 되었지만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맑은 계곡물에 몸을 식히고 성흥사까지 내려와

 

성흥사에 들러 참배를 하고 다시 아래 대장동 버스가 있는곳으로 내려가서 산행을 마무리 한다

토요가자님들 두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했고 너무더워서 아무 생각없이 그냥 걸었던 ...

 

 


성흥사[聖興寺] : 경남 진해시 대장동 팔판산에 있는 절.

흥덕왕 초년에 이 지방에는 왜구의 침략이 잦아 왕이 몹시 고민하였는데,

어느 날 꿈에 백수노인이 나타나서 지리산에 있는 도승을 불러 왜구를 평정하게 하라고 하였다.

왕은 사신을 보내어 도승을 모시고 간절히 당부하였다.

도승은 팔판산 위에 올라가 한 손에 지팡이를 잡고 한 손으로 자신의 배를 몇 번 두드리니

뇌성벽력이 천지를 진동하므로 왜구들은 신라 군사들의 함성으로 착각하고 달아났다.

왕이 이에 무염에게 재물과 전답을 시주하여 구천동에 터를 골라서 절을 창건하게 하였다 한다.

창건 당시 이 절은 승려가 500여 명이 머물렀던 대사찰이었으나 창건 후 276년 만에 화재로 소실된 뒤

대장리로 옮겨 중창하였고, 1668년(현종 9)의 화재로 다시 구천동으로 옮겼다가,

1789년(정조 13)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중창하였다현존하는 당우로는 중창 당시의 건물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최근에 주지 성법(性法)과 신도회의 노력으로 중건한 나한전·칠성각·일주문·요사채 등이 있다.

또, 이들 전각에는 불상 6위, 나한상 16위, 불상의 연화대좌 3기, 목제연화대좌 1기 등이 있으며

이 밖에도 당간지주·부도 등이 있다. 특히, 이 절에는 1890년(고종 27)에 그린 무염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데,

매우 섬세한 필체를 보이고 있다.

또, 절 입구에는 7기의 원통형부도가 있고, 절 옆에는 수령 6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로, 833년에 무염이 창건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溪寺)의 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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