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약산[蒔藥山 510m], 구덕산[九德山 565m], 구덕산480봉, 승학산[乘鶴山 497m], 엄광산[嚴光山 504m],
구봉산[龜峯山 431m]
위치 : 부산 광역시 사하구, 사상구, 서구, 부산진구, 동구
일시 : 2021. 03. 09. (화요일) 친구 성태, 윤기와 함께 재활훈련차
날씨 : 맑은날
산행코스 :
사릿골~박씨묘~낙동정맥길~시약산~구덕산~승학마루~억새밭목책길~승학산~억새평원(거북약수터 진입로)~억새평원
~승학약수터~힐링편백숲~승학산 둘레길~구덕꽃마을~엄광산~구봉산~구봉봉수대~꽃동산약수터~대신공원~구덕운동장
특징, 볼거리
시약산(時藥山)은 구덕산 남서쪽에 연이어 있는 산으로 사하구(괴정동)와 경계를 하고 있다. 정상에는 구덕기상레이더관측소가 있다.
이 산 밑으로는 서구와 사하구를 연결하는 대티터널이 뚫려있고, 사하구로 흐르는 괴정천은 이 시약산에서 발원하고 있다. 시약산의 산명의 뜻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蒔」자가 ‘모종낼 시’로 약초를 심거나 채취한 곳으로 추측된다.
구덕산은 해발 565m로 부산 사하구 당리동,서구 서대신동의 경계에 솟아 있는 산으로 산정은 종순형이며 산록은 대체로 완만하다.
북동쪽으로 고원견산에 남서쪽으로는 시약산에 각각 이어져 있고 남동쪽 산록에서는 보수천이 발원한다. 대신동을 비롯한 서구 일대의 진산에 해당된다.
승학산은 부산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산으로, 구덕산과 시약산의 서쪽이며 엄광산의 남쪽으로 사하구 당리동의 뒷산이다. 흔히 동아대 뒷산으로 불린다. 승학산은 고려말 무학대사가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산세를 살폈는데 이곳에 오니 산세가 준엄하고 기세가 높아 마치 학이 나는 듯하다 하여 승학산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승학산은 억새가 아름답기로 이름이 나 있다. 억새군락은 승학산 동쪽 제석골 안부에 있다. 수만평에 이르는 부산 제1의 억새밭이다. 바람 따라 일렁이는 대 장관은 전국의 어느 억새명산 못지 않다.
엄광산은 일제강점기부터 ‘산이 높아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뜻의 고원견산으로 불렀으나, 1995년 4월 ‘부산을 가꾸는 모임’의 ‘옛 이름 찾기 운동’으로 엄광산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금정산맥 말단부에 속하며 구덕산, 구봉산과 이어져 있고 주로 안산암질의 암석으로 구성되었다. 엄광산은 주위에서 고도가 가장 높아 동구, 서구, 사하구, 북구, 해운대구 일부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부산이 항구도시임을 실감하게 한다.
구봉산(龜峰山)은 동구 초량동과 서구 동대신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해발 408m로 엄광산과 구덕산으로 이어지는 부산항의 등줄산맥의 산정중 하나이다. 구봉산은 오랜 지질시대의 삭박작용으로 전형적인 종순형의 노년산지를 이루며, 사면이 완만한 것이 특징이다. "구봉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은 산의 모습이 마치 거북처럼 엎드려 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산정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통신수단이었던 봉수대가 자리잡고 있으며, 봉수대 일대는 시민들을 위한 체육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이 일대를 중앙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구봉산 봉수대
근대적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이전 연변(沿邊)의 안위를 중앙에 알리는 군사적 목적으로 행해진 것이 봉수(烽燧)였다. 이 봉수는 밤에는 봉화로, 낮에는 연기로 알리게 봉수망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 봉수망은 산정(山頂)이 되어 그 기지에 봉수대를 설치하였다. 오늘날 초량 뒷산이 되는 구봉산에 구봉봉수가 있었다. 구봉봉수대는 영조 원년(1725) 석성산(오늘날의 서구 천마산)에서 옮겨온 것이다. 석성산은 당시 초량왜관(지금의 용두산 일대)과 가까워 군사기밀이 누설될 것을 우려하여 구봉산으로 옮긴 것이다. 구봉봉수대는 자체적으로 바다를 후망(후望)하고 또 황령산봉수대와 다대포의 응봉봉수대의 봉수를 받아 부산포의 수군과 주위 봉수대에 전하는 역할을 하였다.
중앙공원 충혼탑
중앙공원(구 대청공원)은 중구 영주동 산 4번지 일대로 부산시내서는 가장 최근에 개발된 시민공원이다. 한국전쟁 때 전국 곳곳에서 몰려들었던 피난민들의 판자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부산시에서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가꾸기 위해 1970년 9월 2일 '대청공원'이라는 명칭으로 공원구역 고시, 1982년 공원 조성계획이 고시되고, 1983년 9월7일 공원조성이 완료되었다. 1986년 공원의 명칭이 '중앙공원'으로 변경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앙공원의 충혼탑 건립이전에는 용두산공원에 충혼탑이 있었으며 부산출신 선열들의 영령 7,794위가 봉안되어 있었다. 중앙공원의 충혼탑 건립은 '부산직할시 충혼탑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추진일정을 살펴보면, 1982년 9월 12일 본 공사가 착공되어 1983년 9월 11일 준공되기까지 약 1년간의 공사끝에 웅대한 위용을 드러내었다.
이 충혼탑에는 겨레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부산지역 출신 선열들의 영령을 모시게 되었다. 현재 충혼탑에 봉안되어 있는 영령들은 총 9,427위중 육군 7,316위, 해군 352위, 공군 56위, 경찰 539위, 군속 30위, 근로자동원 127위, 애국단체 99위, 기타 294위이며, 1995년 3월 부산 편입지역 기장군출신 585위, 신규 30위가 봉안되어 있다. 충혼탑의 규모는 탑의 높이가 70m중 탑신이 39m, 상륜부가 31m이며, 영령실 30평, 광장 840평, 연못 45㎡, 양수장 1개소, 충혼비 1기, 상징물 1기로 구성되어 있다. 탑의 설계는 김중업씨가 맡았고, 글은 이주홍씨가 짓고, 글씨는 한형식씨, 명각에는 장상만씨가 담당하였다. 탑에는 다음과 같은 충혼탑문이 수록되어 있다
부산 민주항쟁기념관
부산 민주항쟁기념관은 중구 영주동 산 10번지 일대(중앙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지면적 20.337㎡, 연면적 5,278㎡에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로 부산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과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부산민주공원 조성 범시민추진위원회가 주체가 되어 조성된 공원이다.
기념관의 기본구성 방향은 첫째, 민주화, 프로젝트로서의 전시내용을 구성하는 것이다. 민주항쟁의 과거에 대한 재조명과 이를 현대적·미래적으로 계승·완성하는 지속적·실천적 개념으로서의 민주화프로젝트를 내용의 축으로 상정하며, 부산민주항쟁을 중심으로 한국·세계의 민주항쟁의 진행 모습을 기억, 재조명하는 사건적 축과 삶과 생태·환경 등의 생활 문화적 축의 연계 표현을 통해 민주주의의 기억과 재해석, 일상·실천 속으로의 확장을 유도한다.
또한 과거의 기록·해석에서 출발해 시간(과거, 현재, 미래)과 공간(부산·한국·세계)을 초월해 인간·기술·자연이 공생하는 '민주주의의 재해석'을 국내외적으로 이슈로 제시한다. 둘째, 문화예술의 민주주의화와 참여 민주주의의 문화를 예술적으로 표현한다. 민주항쟁의 문화예술적 표현을 통해 지배계급 위주의 문화예술의 민주주의화를 이끌어내고 수용자 참여적인 전시공학을 통해 추상적 개념의 참여 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셋째, 전시대상의 시간과 공간으로 공간의 연속성을 중시하면서 4.19에서 현재까지 부산의 40여년을 주요시간 대상으로 설정해 부산을 중심적으로 다루면서 전국·세계와 현재, 미래를 인간의 자유의지, 압제에 대한 저항의지란 보편적 가치에서 표현해 민주주의적 가치를 적극 제시한다. 이상 3가지를 기본방향으로 해서 조성되었다.
부산민주공원의 주요시설로는 상징조형물인 민주의 횃불, 전시실 중극장, 소극장, 야외극장 등을 들 수 있다. 먼저「민주의 횃불」의 조형적 의미는 대략 다음과 같다. 원통형 공간에 유입되는 빛에 투과되면서 은빛으로 반짝이는 역삼각형의 떠있는 구조물은, 비일상적이고 이탈적인 현상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며, 내부와 외부, 관통과 차단이 서로 맞물리면서 새로운 조형예술의 가능성을 추구한다.
상징적 의미로는 '민주'라는 말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 인내를 통하여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조형물은 내부에 수많은 반사 재질의 조각들을 설치하여 이름 없는 민주의 별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내부와 외부는 죽은자와 산자, 이상과 현실, 안과 밖이 통일되어 '민주'의 이름으로 하나의 공간에서 승화되는 것을 보여주며, 부산의 힘이 무한의 시공간을 향해 끝없이 비상하는 것을 상징한다. 8개의 지추는 8괘와 각 방위를 의미하고 자연과 우주의 모든 기운이 서로 보완하고 의지하여 사방팔방으로 울려퍼지는 민주화 운동의 기상을 나타낸다. 가운데 제단을 중심 축으로서 세 꼭짓점에 설치되어 있는 써치라이트는 팔괘에 둘러싸인 삼태극을 뜻한다.
상설전시실의 구성은 민주의문, 회상의 숲, 부산의 함성, 확산의 방, 공공성의 파괴와 생성, 년대의 공간, 영상마당, 추모의 공간, 희망의 빛으로 꾸며져 있어 부산지역의 민주화운동 전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산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중극장」은 학술행사, 강연회와 춤, 노래, 연극, 영화 등의 종합적인 장르의 공연이 가능한 문화공간이며, 가변형으로 활용도를 다각화시킨 실험적 무대인 「소극장」은 연극, 마당춤 등의 공연이 가능한 공간이며, 소규모회의, 강연회, 영화상영 등의 다양한 행사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극장과 소극장에는 오디오 시스템, 비디오 시스템, 무대조명 및 장치를 갖추고 있으며, 「야외극장」에서는 젊은이들의 각종공연, 야외영화상영, 이벤트 등을 펼칠 수 있다. 그 외에도 야외광장, 수목원, 휴식공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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