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산행기록

제 2099차 산행 엄광산ㆍ수정산

갈파람의별 2024. 10. 22. 07:35

구봉산[408m], 수정산[375m], 엄광산[嚴光山 505m]


위치 : 부산광역시 서구 동구
일시 : 2024. 10. 21(월)윤기와 둘이서
날씨 : 흐림

특징, 볼거리
구봉 봉수대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4동 구봉산에 있는
조선 시대의 봉수대.
구봉 봉수대는 1725년(영조 1)에
석성산[지금의 서구 천마산]에서
옮겨진 봉수대이다
부산의 주요 봉수대는 해안에 설치된
전형적인 연변 봉수들로서
5개의 직봉 가운데 제2경로인 동래~한성 간
봉수망의 직봉 및 간봉에 해당한다
구봉 봉수는 다대포의 응봉 봉수에서
황령산 봉수로 연결하는 봉수로
부산포 수군의 전초 기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조선 시대 부산진(釜山鎭)에서 관할하였고
도별장(都別將) 1인 별장(別將) 6인
봉군(烽軍) 100명을 두었다
1740년(영조 16)에 편찬된
『동래부지(東萊府誌)』에 따르면
석성산은 당시 초량 왜관[지금의 용두산 일대]과
가까워 군사 기밀이 누설될 것을 우려하여
동래 부사 이중협(李重協)의 요청으로
봉수를 구봉산으로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구봉 봉수는 봉수 시설이 폐지되는
1898년(고종 35)까지 173년 동안
주요한 군사 통신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 뒷산인
구봉산에 석축의 흔적만 있던 곳에
1976년 10월 봉수대 모형을 재건하였다
연안 봉수의 역할을 한 봉수대로
조선 시대 봉수대의 기능을 알 수 있다

수정산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에 있는 산
수정산 정상에 큰 분지가 있었는데
이 일대에서 크고 작은 수정이
많이 나왔다고 하여 수정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지명의 유래가 된 수정이 채굴된 장소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수정산의 남서쪽으로 엄광산이 솟아 있고 남쪽으로는 구봉산이 이어진다
수정산은 엄광산의 부속산 이다
산지의 북서쪽으로 동의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 때는 이곳에 상서 공원과
대지 공원이 있었다고 한다
산 정상의 남동쪽에서는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여
부산항의 전망대 역할을 한다
부산항에서 김해 국제 공항과
서부산 지역으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건설된 관문 대로의 일부인 수정 터널이
산중턱을 통과한다

엄광산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과
부산진구 개금동 사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엄광산은 1995년 그 이름을 되찾기 전까지는
고원견산(高遠見山)으로 불렸다
고원견산이란 명칭은 일본인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시기는 일본 막부 말기인 18세기
초ㆍ중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부터
‘산이 높아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뜻의
고원견산으로 불렀으나
1995년 4월 ‘부산을 가꾸는 모임’의 ‘
옛 이름 찾기 운동’으로
엄광산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엄광산은 주위에서 고도가 가장 높아
동구 서구 사하구 북구 해운대구 일부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부산이 항구도시임을
실감하게 한다
이 산의 명칭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일본 에도 막부 시기 일본측 외교사절의 일원으로
조선을 다녀간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州)가
귀국 후 저술한 《교린제성》(交隣提醒)에
원견악(遠見嶽)이라는 명칭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고원견산(高遠見山)으로
《부산부사원고》
(釜山府史原稿, 1938년 간행)에서 확인된다
이 산의 정상에 올라서면 대한해협을 지나
멀리 일본의 쓰시마섬까지 바라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은 아닌가 싶다
한국측 자료중 《동래부지》(東萊府誌)나
《동래군지》(東萊郡誌)등을 검토한 결과
고원견산의 이전 명칭은 엄광산(嚴光山)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엄광산의 이전 명칭으로 불리는
고원견산은 18세기 초ㆍ중엽 일본인들에 의해
붙여진 원견악이 고원견산이란 명칭으로
정리되어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