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산행기록

제 2334차 산행 대전의 5대명산 세번째 보문산

갈파람의별 2026. 5. 18. 16:33

마분산[馬墳山 376m ], 강바위산[382m], 비파산[300m], 대별등[307m], 오도산[五道山 337m], 보문산[寶文山 457m]


위치 : 대전광역시 동구, 중구
일시 : 5026. 5. 18.(월) 혼산
날씨 : 맑은날
산행코스 : 산행코스 : 공주말(삼괴동)~마분산~375봉~임도~심각점~강바위산~임도~지푸재(비파치)~비파산성~대전둘레길1구간~사한정~오도산~절고개~임도~보문산~보문산성~보운대(큰바위전망대)~대사동

특징, 볼거리
마분산
대전광역시 동구 구도동 에 소재한 산이다
말똥산의 한자어다
마경산(馬鏡山)이라는 이름도 있으나 잘못된
명칭이라 한다
지금은 마분산으로 가닥이 잡혔다
대전동구문화원의 지명유래에 '공주말 북쪽에
위치해 있다. 산꼭대기에 커다란 말의 무덤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에 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으며
정상석은 없다

강바위산
대전광역시 동구 구도동 에 소재한 산이다 대전동구문화원의 지명유래 내용에 '샹바위 (새앙바위, 강암) 구도동의 뒤쪽에 있는 산속에 있다'
그리고 '샹바위산은 구도동과 소호동에 걸쳐 위치해
있는 3산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짐작컨대 새앙바위가 강바위로 변음된듯하다 정상석은 없으며 평상 측면에 정상임을 알리는
팻말이 붙어있다

지푸재(비파티)
대별동과 소호동을 잇는 고개다
고개 양쪽에 있는 봉우리의 바위들이 마치
비파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파티라고 불리던 것이 발음이 그 뒤에
와전되어 지푸재로 부르고 있다는 설과
비파산이 우뚝하여 그곳의 허리에 난 고개가
깊은 골짜기를 통하여 나있기 때문에 지푸재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함께 전한다

비파산
대전광역시 대별동과 소호동에 소재한 산이다 비파산성을 품은 산이다
비파티(치)의 유래와 상응한다

대별등
비파산과 같은 능선상 가까운(약5분) 거리에
소재한 산이다

비파산성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된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고개 이름을 따 비파산성 또는 동네이름을
따서 소호동산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성이 허물어져 원형을 알 수 없으나 서남쪽에
문지가 있었던 것 같고 봉수대도 있었다고 하며
백제 토기편과 와편이 출토되고 있다고 한다 보문산성과 동쪽에 있는 능성 삼정동산성과
연계되는 산성으로 판단하고 있다

오도산
사한정(沙寒亭)에서는 이사동 유교민속마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오도산이란 이름은 어려움이 있어도 나의 할
도리는 한결같다는 뜻에서 오도산이라는
지명이 나왔다고도 하는데 안내판은 다섯길의
산이란 오도산으로 표기 되어 있다

보문산
대전광역시 중구에 있는 산으로 1965년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주봉은 시루봉이다
시 중심부 남쪽에 솟은 산으로
보문산이란 이름은 보물이 묻혀있다 하여
(혹은 재물이 끝없이 나온다는 그릇인 화수분이
묻혀있어) "보물산"으로 부르다가 보문산으로
개칭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화수분 바가지 전설에는 화수분 바가지 안에
흙이 들어가자 끝없이 흙이 쏟아져 지금의
보문산이 되었다고 한다
또 나무꾼이 죽어가는 물고기를 살려줘서 얻은
'은혜를 갚는 보물주머니'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보문산 녹음은 대전팔경의 하나로 꼽히며
대전광역시의 대표적인 녹음 공원이자
도시자연공원으로ㅈ여러 문화재와 함께 보문랜드
푸푸랜드 청년광장 보문산공원(사정공원)
야외음악당 전망대 유희시설 케이블카 등
휴식공간이 잘 갖추어져 있어 시민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또 골짜기마다 20여 곳의 약수터가 있고
시루봉 아래 고촉사에는 미륵상을 닮은
자연 암석이 있다
시루봉에는 전망대 팔각정 보문정(寶文亭)이
설치되어 있다

보문산성(寶文山城)
시도기념물(1989년 03월 18일 대전광역시 지정)
보문산성은 대전광역시 보문산에 있는 백제
시기에 테뫼식으로 축조된 석축 성곽이다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평면은 남동∼북서 방향을 장축으로 하는 긴
타원형이다
산성 동북벽은 급경사인 자연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석축하지 않았다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서남벽으로
16단에 3.42m의 높이다
서문 터와 남문 터가 남아 있는데 서문이 주된
출입문이다
북단의 장대지는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다
성안에서 특별한 시설물은 확인되지 않았고
백제·고려 시대 와편이 나왔다
이 산성은 1991년에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