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산행기록

제 580차 금정산 나비바위(산사처 시산제)

갈파람의별 2010. 3. 15. 17:37

산사처 식구 48명과 함께

날씨 : 눈이조금 날렸고 매우 쌀쌀한 날씨

 

높 이

금정산 제3망루 앞(나비바위)

위 치

부산 금정구 남산동

특징/볼거리

금정산성

부산광역시 금정구·동래구·북구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 석축산성

사적 제215호. 둘레 1만 7,336m, 높이 1.5~3.2m.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산성으로서, 지금은 4㎞의 성벽이 남아 있을 뿐이다. 언제 처음으로 축성했는지 알 수 없으나 성의 규모나 축조양식으로 미루어볼 때, 삼국시대에 낙동강 하류에 침입하는 왜구에 대비하여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금정산성은 조선시대에 중축한 것이다. 1703년(숙종 29)에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이 남쪽 끝에 있는 동래부의 방비를 위해 금정산에 축성할 것을 건의하여 둘레 9,011보, 높이 15척에 동·서·남·북 4문이 있는 산성을 쌓았다. 그뒤 1707년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둘레 5,643의 중성(中城)을 쌓고, 시설을 보강했다. 1806년(순조 6)에는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이 동문을 신축하고 서·남·북 문루를 다시 쌓으니, 그 길이가 32리였다. 산성의 성벽은 이곳에 많은 화강암을 이용해 쌓았고, 수구문·보루·암문 등이 설치되었다. 성 안에 국청사(國淸寺)·해월사(海月寺)가 있었으나 지금은 국청사만 남아 있다. 1972년에 동문과 남문, 1974년에 서문과 수구문, 망루가 복원되었다.

조선시대에 돌로 쌓은 석성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숙종 29년(1703)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쌓은 곳이다. 전체길이는 18,845m이었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박태항에게 책임지어 쌓게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에 앞서 현종 8년(1667) 통제사 이지형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중요한 곳에 있어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한 성임을 알 수 있으며, 성의 크기나 성벽을 쌓은 양식으로 볼 때 처음 성을 쌓은 시기는 보다 앞선 시기까지도 올려 볼 수 있다.

숙종 33년(1707)에는 성이 너무 넓다 해서 성의 중간에 남북을 구분하는 성을 쌓았고 영조 50년(1774)에는 성이 너무 커서 지키기 어렵다 하여 일단 폐지하였다. 순조 6년(1806)에 성을 다시 고쳤으며, 성벽은 화강암을 자연석 그대로 이용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동문·서문·남문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에 북문을 복원하였다.

현재 4㎞의 성벽이 남아 있으나, 조선 후기에 도성과 주변의 대규모 방어시설을 충실히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산성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등산시간

(휴식포함 약2시간30분 소요)

등산지도
(개념도)

산행코스

식물원~동문~나비바위(제3망루앞)

일시, 집결지

2010년 3월 7일(첫주 일요일)
09시30

집결지 : 금강공원 식물원앞

준비물

간식, 식수(1리터), 기타개인별..

회비 20,000원
점심 준비하지 마세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