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및 산 이야기/금정산

7월말 폭염속에 금정산 9암자를 찿아서...

갈파람의별 2016. 8. 1. 14:01

7월30일 무지무지 더운날 가슴 조아렸던 일들 해결도 잘되고 해서 범어사 주변 암자들을 한바퀴 돌아보려고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서 범어사 아래 지장암에서

순례및 참배길을 나홀로 맘대로 시작 한다


지장암 : 범어사 입구에서 매표소 까지 약2.5km 구간의 산책로 중간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1980년대 창건한 부속암자로 범어사 고승들의 다비식을 거행 하는곳 이기도

            하다


지장암 극락전 앞에서 보이는 무명암과 의상봉


입구 암굴속 물이솟아나고 있는 용왕전 참배를 하고 산신각옆 산속으로 올라간다

계명암으로 가기위해


뒤돌아본 지장암


직진 산으로 올라가는길이 있다 그길은 아마 계명봉으로 올라가는길이라 봉수대까지 올랐다가 계명암으로 가야 하기에

선명히 보이는 이길로(범어사 가는길)가다가 개척해서 계명암으로 올라가리라 맘먹고 이길을 따라간다


5분후 우측 산으로 질러 올라가는데 ㅎㅎ

계명암으로 가는 전력선인듯 보인다 전선과 함께 된삐알 낙엽에 미끄러 지면서 올라간다


아이쿠 계명암아래 이끼긴 절벽을 만난다

우회하고 또 우회하면서 길도아닌곳으로 오름을 후회도 하고 ㅎㅎㅎ 


우여곡절 아슬아슬 계명암에 도착했지만 체력은 방전되어....


잠시휴식후 건너를 바라보니 의상봉 원효봉 고당봉까지보이고

아래에는 금강암과 대성암 그리고 범어사 일부도 보인다

계명암 : 금정산 범어사의 암자로 약사여래불을 모신 약사전으로 보덕굴 이라고도 한다

            동쪽을 향하고 있는 계명봉(鷄鳴峰)에 자리한 범어사 계명암(梵魚寺鷄鳴庵)은 통일 신라 시대 의상 대사(義湘大師)가 이 부근에서 절터를 물색하던 중 한밤중에

            닭 울음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 암자를 세우고 계명암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계명봉은 일본에서 바라보면 장군의 투구처럼 보이고 대마도에서 바라보면 닭의 형상이며 계명봉에서 대마도를 바라보면 지네의 형상이라 하여 일본인들이 침략

            당시 암탉 바위를 없애 버렸다고 한다.


법당뒤 암반에서 나오는 샘 암반수 이다


계명암의 전설을 안고 있는 자웅석계


자웅석계에서 내려본 계명암


계명암을 나와 청련암으로 내려가는길..


범어사 청련암 불무도 : 기묘한 선무도의 가람 범어사 청련암..   불교무술의대가 양익스님의 흔적을 찿아

                                푸를 청에 연꽃 연자 푸른연꽃이라는 사찰의 이름부터가 어딘가 심상찮은 이곳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암자라기엔 너무큰 규모에 한번 놀라고

                                절 곳곳에 스며있는 기묘한 선무도의 분위기 때문에 또 한번 놀라고

                                마지막으로 지장원의 지장보살과 호위하는 보살들의 위용과 섬세함에 한번더 놀랄 것이다


청련암 지장원


청련암을 뒤돌아 시멘트 포장길로 조금 올라가면 내원암이 나온다


내원암 전경

내원암 :범어사 내원암의 제일선원 이곳은 성철 큰 스님을 비롯  역대 고승들의 참선 수행처로 유명한 곳이다

           1985년에 재건된 대자비전에는 천수관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내원암 참배후 다시돌아 내려오면 등로가 나온다

이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나오는 첫번째 갈림길 여기서 고당봉 쪽으로 오른다


길사이로 올려 보이는 고당봉


30여분 오르다 보면 두번째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가산리 마애여래 입상쪽으로 올라간다


쫍아지는 등로


능선 꼭대기 올라오면 마지막 갈림길 우측 가산쪽으로 100m정도 내려가면 마애불이 있다


가산리 마애불

마애불 앞에 나오는 샘물 물맛이 참좋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높이 12m. 불상은 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하여 세부표현 뿐만 아니라 윤곽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이다.

소발(素髮)의 머리에 둥글고 봉긋한 육계(肉髻)가 표현되었으나 희미하다. 눈썹은 깊이 새겨 뚜렷하게 남아있으나 눈은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코는 큰 편이며 입은 작다.

삼도가 표현되었으며 어깨는 약간 각지게 나타내었다. 편단우견(偏袒右肩)의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오른쪽 옆구리에서 왼쪽 어깨로 가로지르는 한 단의 옷섶이 비교적 둥

근 사선을 그리기 때문에 가슴이 많이 드러나 보인다.

무릎 아래쯤에는 두 줄의 완만한 V형을 그리는 법의 끝단이 남아있으나 불상을 표현한 각선(刻線)이 매우 얕고 가는데다 마모가 심하고 바위 여러 곳에 균열까지 있어 천

의(天衣)의 형태나 세부 주름 표현을 자세히 알아 볼 수 없다.

수인(手印) 또한 명확히 알아볼 수 없는데 오른손은 가슴부근까지 들어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뜨린 표현으로 짐작된다. 광배(光背)는 알아볼 수 없으나 대좌는 단판의

꽃잎을 선각한 연화대좌로 추정된다.

표현이 분명하게 남아있는 부분이 거의 없을 만큼 마모가 심하여 분명히 알아볼 수는 없으나 상호의 표현이나 각진 어깨선 그리고 거구의 신체에 생략된 선들과 도식적으

로 단순화된 표현들에서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출처 : 다음 백과사전)


마애불에서 올려보이는 거대한 바위 금정산 하늘리지길 마지막 바위군 이다


마애불 위 통천문


마애불이 있는 바위군


하늘리지 능선


ㄱ금정산 최고봉인 고당봉 북쪽의 모습


아래로 내려 보이는 계명봉


여름들꽃 여로가 이쁘게 피어 있다


원추리꽃


고당봉아래 잣나무 숲길을 지나간다 금샘으로 가는길



금샘 가기전 바위 ㅎㅎ 아래 받치고 있는 나무들이 재미 있다

철거하면 바위가 무너질까 ...


금샘 설명하고 있는 표지판이데...쩝...


이바위를 올라야 금샘을 볼수있다


금정산 과 범어사의 설화가 이 금샘이 없어면 무슨의미가 있을까

금샘과 아래 보이는 북문,  원효봉

금정산 금샘[金井]은 금정산(金井山) 고당봉(姑堂峰)[801.5m] 동남쪽 8부 능선에 돌출한 바위 무더기 중 남쪽에 솟아 있으며, 마치 샘물이 솟아나듯 항상 물이 마르지

않고 괴어 있는 바위 정수리를 말한다. 금정산 금샘은 범어 삼기(梵魚三奇)로 불리는 금정산 비경 가운데 하나로, 암상금정(岩上金井)이라고도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금정산 금샘은 2009년 11월 30일 부산광역시 금정구청 향토 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9월 25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62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주변 표지판에

금정산 금샘의 유래에 대해 우리말로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고, 또한 영어·일본어·중국어로 금정산 금샘의 주소 및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금샘에서 보이는 고당봉


아래 계명봉과 계명암


다시 돌아 올라오면서 가까워진 고당봉을 올려보고


고당봉을 오르는 계단에서 바라본  아래 선바위와 금샘이 숨어있는 오른쪽 맨아래 있는 바위군



정상은 커다란 바위 와 서족으로 10m가면 너른 바위로 형성 되어있다


고당봉정상석

금정산 금샘이 있는 고당봉은 금정산의 주봉으로 백두 대간이 동해를 따라 흘러와 세워 놓은 마지막 영봉으로, 봉우리에 서면 멀리 광안 대교를 비롯한 바다와 부산 시가

지 및 낙동강, 김해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당봉의 동남쪽 8부 능선의 바위 덩어리가 바로 금샘인데, 부산 금정산성 북문에서 고당봉으로 올라가는 길의 오른쪽에 위치

하고 있다.
금정산은 북쪽으로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동쪽으로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쪽으로 동래구, 연제구, 서쪽으로 북구에 접하며 부산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북쪽 장군봉

에서 고당봉을 거쳐 남쪽의 상계봉으로 이어지는 사이에는 원효봉, 의상봉, 대륙봉, 파류봉, 동제봉 등 준봉이 즐비하다.


서쪽바위에는 태극기가 있고


정상아래 있는 고모당에 들러 향을 피워두고 돌아선다

미륵사로 가기위해..

고모당 : 정상아래 있는 고모당 당집은 불과 한두 평 정도의 작은 규모의 고모당은 무속인이나 박수, 보살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치성을 올리며, 때때로 스님이 당제(堂祭)

            도 올린다. 고모당은 범어사에서 세웠으며 그 이야기를 함으로써 고모당이 범어사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약 400여 년 전에 혼자된 밀양 박씨 성을 가진 여인이 불가에 귀의해서 범어사 화주보살로 봉사하며 살았다.
            이 보살이 범어사 주지에게 죽을 때 유언으로 저 높은 고당봉에 고모영신(姑母靈神) 을 모시는 산신각을 지어 고당제(姑堂祭)를 지내준다면 수호신이 되어

            범어사를 돕겠다고 했다.
            범어사에서 유언대로 고당봉에 작은 산신각을 지어 해마다 정월 보름날과 단오날 두 차례 제사를 지내 준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고모당(姑母堂)이다.
            내부에는 어떠한 장식도 없고 오직 향로 1개와 고모영신(姑母靈神), 산왕대신(山王大神) 두 개의 위패(位牌)와 그 단뿐이다.


미륵사바위위 봉우리 미륵봉 뒤로 고당봉이 보인다


미륵사 : 미륵사(彌勒寺)가 언제 창건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문헌은 없으나 다양한 이야기가 전한다. 678년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의상보다 앞서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법당인 염화전(拈華殿)을 비롯하여 미륵전, 오백전, 종각, 칠성각, 도솔선원, 독성각,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염화전(拈華殿) : 영축산에서 범왕이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여 연꽃을 바치자, 부처님이 연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였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으나, 가섭(가섭)만 참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는 여뫄미소에서 법당이름을 따왔다 한다.
           다른 사찰의 대웅전에 해당하는 법당으로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좌우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봉안하였다.


염화전뒤 바위 코끼리 형상

 


미륵사 참배후 북문으로 나온다

금정산성북문 : 금정산성 북문은 1703년(숙종 29)에 금정산성을 축조하면서 함께 설치되었다. 1824년(순조 24)에는 금정산성 북문에 문루를 만들고 수비군을 배치하였다

                     고 기록되어 있어, 그 이전에는 육축(陸築)[성문을 축조하기 위하여 무사석 등 큰 돌로 축조한 성벽]과 성문만 축조되고 성문에는 문루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금정산성 북문이 허물어져 육축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1986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정비하였다. 이후에도 부분적인 보수와 해체

                     보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북문에서 원효봉쪽으로 한고개 넘어 왼쪽 습지 보호지역으로 하산을 하며 철망을 따라 계속 내려간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가면 원효암

직진해서 5분만 내려가면 미륵불이 나온다


용바위 아래 석문이 있고 석문만 지나면 미륵불이 있다


미륵불 : 우리나라 북방불기를 쓸때인 불기2951년에 조성되었다고 적혀 있으므로 현재의 통일된 불기로 환산 하자면 1924년(갑자년)11월에 조성된 것이다


미륵불위 용바위의 너럭바위에서 바라보이는 계명봉과 중턱에 자리잡은 계명암 오른쪽 아래 지장암



다시 뒤돌아 올라와서 원효암으로 ...


광대버섯류


철망사이로 들어가면 이내 원효암이 나온다




몇년전에 올랐던 원효암과는 완전히 다른 원효암이 되어있어 다소 실망감을 안고 참배를 한다

태고의 신비함이라 할까 무지 적막하고 옛 집을 찿아온 느낌이었던 원효암이었건만 너무 화려하게 변해 있었다

원효암 : 범어사 10개의 산내 암자 중 하나로 신라문무왕(678)년에 의상대사께서 범어사를 창건하실 즈음 같은 해에 원효대사께서 금정산 미륵암과 함께 원효암을

            창건하였.

          옛 법당에는 제일선원무량수각의 현판이 붙어 있었는데 아직 새로운 법당에는 현판이 달려있지 않았으나 곧 현판이 걸릴 것이라 생각한다.

            옛 법당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직접 썻다는 '무량수각'이라는 편액이  해남 대흥사 요사채에 써있는 글씨와 똑같다. 그곳에도 추사 김정희 선생이 썼다고

            하는 '무량수전'이라는 글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량수전, 아미타전, 극락전은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전각으로 알고 있는데, 원효암에서는 '무량수각'에 모셔진


            부처님 '관세음보살님'이시다.


원효암에서 동쪽으로보이는 시가지와 오륜대



원효암 일주문 아래 길




원효암에서 조금 나오면 의상대사가 수도 했던 자리 의상대가 있다

의상대 : 범어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수행하시던 곳으로 널리 알려진 범어 삼기팔경중 8경의 하나인 빼어난 조망 터다. 의상망해(義湘望海)로

            불리나 실제로 이곳 장소를 아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의상대에서 보이는 시가지 멀리 장산과 해운대 앞바다까지



의상대에서 바라본 고당봉

하늘에 먹구름이 낀다 소나기 한줄기 내릴듯한 분위기이다


진짜 원효암 일주문이라 해야 할까

암튼 이곳을 지나 범어사쪽으로 하산을 한다


범어사 입구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100여m북문쪽으로 올라가면 금강암이 나온다

너덜겅사이 흐르는 물소리를 들어며 금강암으로

금강암 : 범어사 왼쪽 금정산성 북쪽으로 가는길에바위로 된 계곡 돌바다를 따라올라가면 북문 등산로의 마지막 암자이다


금강암 전경 너무 정겨운 사찰이다

이곳에서 참배를 하고 대성암으로 가기전 ㅎㅎ 아까흐르는 물소리에 자꾸 끌린다

잠시 숨어 들어가서 땀에젖은 몸을 물속에 잠시 ...... 숨쉬기가 너무 쉬워진다

옷도 갈아입고 새로운 기분으로


대성암 가는길 개운함에 발걸음도 가볍다



대성암 : 비구니 수행도량 일반인 출입제한

의외 ..쩝.. 비구니들이 많이 있다

비구니들의 수행도량인듯 하안거중이라 더 많이 보이는듯 한데  난감하다

밖에서 묵례로 참배만 하고 뒤돌아선다


대성암 바로 아래 에는 범어사가 있다

언제와도 정겨운 범어사 경내를 또 한번 돌아보고 보물들을 감상하며 얼마전 정신나간님께서 불을 질러 소실되었다 복원된 천왕문을 지나는데

보호수가 보이질 않는다 그날 불의 열땜에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금강송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린 모양이다

범어사 : 신라 제30대 문무왕 18년(678년)에 의상대사가 화엄십찰 가운데 하나로 창건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本寺)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국(東國)의 남산에 명산이 있어서 그 산정에 높이 50여 척의 거암(巨岩)이 있고,

            그 바위 한가운데 샘이 있으며 그 물빛은 금색(金色)에다 물 속에 범천(梵天)의 고기가 놀았다. 그래서 산명을 금정산(金井山)이라 하고, 절을 범어사(梵魚寺)라

            한다.”고 하였다.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영남의3대 사찰 이기도 하다.

  문화재 :  범어사 조계문(보물 제1461호), 범어사 대웅전(梵魚寺大雄殿)(보물 제434호), 범어사 삼층석탑(梵魚寺三層石塔)(보물 제250호),

               범어사 동종(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0호),

  천연기념물 : 범어사 등나무 군생지(천연기념물 제176호)



보물인 조계문(범어사 일주문)을 나와 아래버스정류장까지 나오며 오늘 9암자순례길을 다시 한번 뒤돌아 생각해 본다

늘 초심을 잃지않으려는 노력을 더 해야 할것 같다

모든님들을 사랑하는 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