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및 산 이야기/전라 제주 의 산

어머니의 산 전주 김제 경계 모악산

갈파람의별 2020. 2. 25. 12:02

전북의 진산 어머니산 모악산 두번째 찾아 왔다

4~5년전 추억을 더듬어 보며

코로나19 부산권 확산 소식에 밤새 고민을 하였지만 ... 강행을 하기로 하고 모악산 관광단지에 도착

여기도 확산소식에 조용~ 상가가 한산하기만 하다

대원사쪽으로 산행을 시작 한다





구이주차장에서 조금 더 오르면 선녀폭포가 나온다 왼쪽길로는 전주김씨 시조묘가 있는 표지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북한의 고김일성주석의 할아버지묘가 있다.

전주김씨 시조비 모악산주차장에서 약 15분 거리의 왼쪽 산등성이에

전주 김씨 시조인 김태서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김일성은 김태서의 제32대 손으로서,

신라 경순왕의 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7대손으로, 경주 김씨와 같은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고려 고종때 몽고군이 경주 일때를 폐허로 만들자 전주로 피난 이주하여,

그가 전주군으로 봉해지면서 후손이 전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대원사가 보인다

대원사는 보덕화상의 제자 대원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오며

삼국유사에는 고려때 밀교의 양대 도량의 하나인 주석원이 모악산에 있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현재 대웅전, 명부전등은 조선말기의 건축물이, 고려말기의 5층 석탑이 있다.

 증산교 창시자 강일순이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 한다. 대원사 아래 선녀폭포가 있다.


대원사에서


나뭇가지사이로 모악산 정상이 보인다


수왕사

수왕사신라 문무왕(680) 진덕화상이 창건했고 고려 인종 때(1604) 진묵대사가 중건했고,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1953년에 재건했고하고,

진묵대사가 지리산을 보며 수도했다고 석간수가 유명해 일명 '물왕이 절'로 불린다고도 합니다.

국제뇌교육대학원 총장이신 일지 이승헌 대선사께서 대각하신 곳으로서,

선도문화의 부활처이다.명상을 하면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세계적인 명상 수행처라 한다.



능선길오 오르는 마지막 경사길 나무데크로 만들어져 있어 수월하게 올라간다


능선길 간간이 잔설이 남아있다


무제봉에 올라

무제봉은 예부터 기우제를 드리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바로 위 장군바위(쉰길바위)

옛부터 신성시 되는 곳으로 명당으로 생각하고

장군봉 줄기에 묘를 계속해서 쓰니 입산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으며

무제봉에서 기우제를 드리기 위해 땅을 파면 해골이 수 없이 나오고 해골이 나오면 비가 내렸다고 전해진단다.



모악산정상 을 배경으로  오른쪽 장군바위가 보인다



정상으로 오르는 나무데크길


정상아래 장군바위(쉰길바위)에 올라 놀기






모악산 정상에 올라

모악(母岳)이름은 정상 아래에 있는 쉰길바위가 아기를 안고 있는 형상과 비슷하여 동국여지승람에는 모악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름 처럼 포근한 어머니산이다.

삼국유사와 고려사에는 금광이 있어 금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특히 모악산은 예로부터 미륵신앙의 본거지다. 증산교의 본부와 더불어 30-40년대 각종 종교 사찰로

대원사, 귀신사, 수왕사등 사찰을 비롯 무려 80여개의 암자가 있었다.

 

<모악산 산세>김제평야의 동쪽에 우뚝 솟아있어 호남평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호남 4경의 하나로 경관이 빼어나고 국보와 보물등 문화재가 많다.

금산사와 벚꽃. 변산반도의 녹음, 내장사와 단풍, 백양사의 설경과 더불어 호남의 4경이라고 한다.

구성산(487.6m), 청도재, 상봉, 안덕봉(617m)을 잇는 마름모꼴 산릉이 물, , 바람 삼재(三災)를 막아주는 형세다.

마름모꼴 가운데는 금산사가 있다.

 

모악산 정상은 북봉 남봉이 연이어 있다. KBS송신소가 모악산 정상을 찿지하고 있다.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이 새롭게 단장되어 있다.

모악산의 정상은 구 정상석에서 화율봉 방향으로 송신소를 끼고 가다보면 K

BS 송신소 건물 출입구가 있고 그 내부에 있다.

다행이도 송신소 측에서 문을 개방하여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돌아 내려 가는길



매봉쪽으로 가는길 잔설


헬리포트에서 뒤돌아본 모악산



능선길 부드럽다 산죽길 바람 시원하고


매봉에서


금산사쪽으로 하산길



부드러운 산길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 준다


팔각정에서 마실길을 따라 금산사로



금산사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되어 통일신라때 진표율사가 중창하여 크게 면모를 갖추고,

후백제 견훤이 큰아들 신검에 의해 3개월간 갇혔던 곳이다.

국보인 미륵전을 비롯하여 대적광전(보물) 혜덕왕사응탑비(보물) 5층석탑(보물)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특히 미륵전에 있는 높이 11.82m나 되는 미륵불 대불(大佛)

""불쌍한 중생들이여, 57억년 뒤 나와 함께 환생하리라"" 말하고있다.




<미륵전>은 신라 경덕왕 21(762)부터 혜공왕 2(766) 사이에 진표율사가 가람을 중창하면서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았던 체험 그대로를 가람에 적용하여 세웠다.

안에는 미륵장륙상을 본존으로 모셨으며 남쪽 벽에 미륵과 지장보살에게서

계를 받는 광경을 벽화로 조성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지금의 모습은 인조 13(1635)에 수문대사가 재건하였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조선 성종 23(1492)에 작성된 "금산사 5층석탑 중창기"에 의하면,

금산사는 이미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가섭불 때에 있었던 옛 절터를

다시 중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륵불彌勒佛>미륵사상은 미륵상생경과 미륵하생경 등 미륵정토에서 유래한 것이

법상종이며 통일신라 때부터는 미륵사상 및 미륵존상이 신앙되었다

원래 불상의 형태로 나타나기 전 미륵은 보살이었다.

이는 도솔천을 주재하는 보살로, 567천만년 후가 되면 석가불이 미처 제도하지 못한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기 위해서 용화수라는 나무 밑에 부처님의 모습으로 내려와

세번 설법하여 모든 중생들을 남김없이 제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불상이 봉안된 불전은 용화전이다.

미륵불상이 의자에 안자 있는 의좌세의 불상과 입상인 경우 용화꽃 봉우리나 꽃가지를 든 용화수인을 짓고 있다.

그리고 협시보살은 청광과 신광 보살 등 삼존불이다.

미래불이 곧 미륵불이다. 사회가 불안하고 나라가 혼란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지상낙원을 꿈꾸게 된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복음적인 부처가 바로 미륵불이다.

후삼국시대의 궁예가 스스로를 미륵이라 칭한 것을 단적인 예 이다.







주차장으로 나가는길을 따라


ㅇ일주문을 지난다

<일주문>"절에 들어가는 어귀에 우뚝 서 있는 문으로, 기둥을 양쪽에 하나씩만 세워서 지어진 것이 다른 건물과 다르다.

이 문을 경계로 하여 문 밖을 속계(俗界)라 한다.

문 안은 진계(眞界)인 것이며 이 문을 들어 설 때 오직 일심(一心)에 귀의한다는

결심을 갖도록 마음을 촉진시키는 데 그 뜻이 있다.

현상 면에서 나타난 것은 삼라만상이 따로 떨어져 있어서 하나가 아닌 것 같지만

실상인 본질 면에서 보면 그 모든 것이 둘이 아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반야(般若)와 번뇌(煩惱)가 둘이 아니다.

재가와 출가가 둘이 아니며 시간과 공간도 둘이 아니요,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다 누구든지 이 일주문에 들어오면 이 진리를 깨닫고

잃었던 본 바탕을 되찾으라는 일주문이 새워진 의미이다."



무슨 문일까



한산한 상가지역을 지나 주치징에 도착하고


미세먼지 자욱하던 흔적은 어디로 가고 어느새 맑은 하늘이 되어 있다

모악산 정상을 뒤 돌아보며 산행 을 마무리 한다

   渴波濫 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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