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산[赤壁山 166m], 백마산[白馬山 286m], 월명산[月明山 334m]
위치 : 경남 산청군 신안면
일시 : 2023. 10. 12.(목요일) 부산A산악회원들과
날씨 : 전형적인 가을날씨
산행코스 : 단성교삼거리-적벽산-백마사-망춘대-
백마산-월명산-산불감시초소-하촌 산성마을
특징, 볼거리
적벽산 높이 : 166m
위치 : 경남 산청군 신안면
적벽산은 높이 보다는 인근지역의 유적지 답사
와 함께 하는 실버 산행지로서 손색이 없으며
여름철에는 강과 산을 두루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가을이 되면 적벽에 단풍이 물들고 보름달이
그 위로 솟아오르면 시원한 강바람과 밝은 달이
운치를 더하면 강심에 배를 띄우고 밤을 새워
놀이가 이어지곤 했는데 어느 날 절벽에서
강으로 떨어져 내려온 바위에 성주가 탄
놀잇배가 부서져 그만 강물에 빠져 관인을
잃어버렸다는 고사가 전해온다
중국의 지명을 쫓아 이름을 붙인 것은
이곳 경치가 뛰어난데서 유래한 것으로
소동파의 적벽놀이를 모방하여 이 지방에는
기방계라고 하는 모임이 있어 추칠월 기망인
16일이 되면 이곳에 모여서 시주와 뱃놀이를
즐긴다
신안진 옛 나루가 가까이 있었으므로 왕래하는
길손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이곳 풍광을 읊은 시가 수없이 많은 것도 경치가
시심을 돋우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적벽에는 옛 현감들의 선정을 기리는
마애비 여럿이 여러 편의 시와 함께 새겨져 있었는데 일제시대에 도로를 개설하면서 모두
파손되었는데 그나마 온전한 마애비가
하나 남아 있다
1862년(철종 13년) 단성민란의
주동 인물이었던 해기 김령의 은혜를
잊지 못하는 이 고장 사람들이 그 공을 기려서
적벽에다가 마애비를 남겼는데 그 뒤에
도로개설로 말미암아 비문 일부가 손상되었기에
유지인사 몇 분이 힘을 모아서 적벽 높은 곳에
다시 비를 새겼다
비문에 이르기를 "여러 사람의 뜻을 바윗돌에
새겼으니 돌은 가히 부서져도 그 이름 부서지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또한 절벽 높은 곳에는 우암 송시열선생의
'적벽' 두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백마산 높이 : 286m
위치 : 경남 산청군 신안면
백마산(白馬山)은 높이 보다는 인근지역의
유적지 답사와 함께 하는 실버 산행지로서
손색이 없으며 여름철에는 강과 산을 두루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백마산 일대의 경치는 예로부터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조선시대에 적벽 아래 강변 숲 속에는 신안루를
비롯하여 경연 담분 유취 매연 우화 등
여섯 누각이 있었다고 전한다
멀리 서울에서 도보로 8백 8십리를 내려온
길손이 이곳을 차마 그저 지날 수가 없어서
수려한 풍광에 젖어 가무와 풍악속에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고 한다
백마산은 삼면이 절벽으로 둘레가 2,795척이고
동남쪽은 100여 척으로 된 자연산성이다
정상은 평탄한데 여기에는 못과 창고터가
남아있다
또한 암반에는 깊이 15cm가량의 군용으로
쓰인 구멍 100여개가 남아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이 성은 자주 이용되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진주에서
밀려든 왜적을 막기 위해서 창의병들이
이 산성을 지키고 있었다
한번은 폭염의 7월인데 왜적이 성을 포위한 채
며칠이고 기다리는 지구전을 펼치는 가운데
성안에는 물이 떨어져서 사람과 말의 기갈이
막심하였다
이때 한 지혜로운 장수가 말을 바위 끝에
세워두고 쌀을 말 등에 퍼서 던졌더니
산밑에서 성을 포위하고 있던 왜병에게는
그것이 마치 성안에 물이 많아서 말을 멱감기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그들은 더 오래 포위를 해도 승산이 없을
것으로 알고 퇴각하였는데 이때 성안에 있던
병사와 말이 일시에 내달아 강물을 마셨더니
신안강 물이 세 치나 줄었다는 전설이 있고
그 일로 인하여 산 이름도 동산성에서 백마산성 으로 변하였다
또한 이곳은 정유재란 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면서 합천 초계의 권율 장군영에서 출발하여 남해의 전세를 살피기 위하여
지나가는 길에 이 산에 올라보고 단성현에서
하룻밤을 유숙한 행로이기도 하다
백마산 아래 야산 일대에는 선사시대의
유적 고분군이 있으며 강을 사이로 하여
강루마을 위쪽에는 선사유적이 산재하여
역사자료로 보전하고 있다
산성마을에는 추강 이창이 강학하던 유연재가
있어 채례를 하고 있으며 조금 거리를 두고
안곡영당에는 농서군 이장경 문열공 이조년
경은 이포 모은 이인립 경무공 이제를
배향하였다
백마산 등산로는 3번 국도상의 신안면 하정리에 있는 모리마을의 백마사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코스와 중촌리 산성마을 코스 등이 있는데
어느 코스나 편안하고 짧기 때문에 인근지역
등산객의 건강과 여가선용에 쉽사리 이용할 수
있고 성철스님생가와 문익점선생 유적답사을
겸한 실버산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어느 코스를 이용하든 거리가 3km이내로서
전체 산행시간은 2시간이면 충분하고 정상에
서면 경호강과 적벽산의 어울림을 볼 수 있고 지리산의 위용도 느낄 수있는 산이다
월명산 높이:334m
남쪽으로 백마산 북쪽으로 대성산과 이어져
있으며 산을 끼고 있는 적벽들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 진 전망바위 및 상사바위가 일품이다
경호강은 남강의 상류로서 생초면 강정에서
진양호에 이르는 장장 32㎞의 물길이다
그 경호강 물줄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적벽산과 백마산 월명산을 이어타게 된다
300m대의 낮은 산이지만 왼편 경호강벽
깎아지른 절벽과 암릉미는 상상을 초월한다
산행내내 백마산 월명산을 싸고도는 유려한
경호강 줄기와 지리산 동부능선의 호쾌한
조망또한 빠뜨릴 수 없는 산행재미다
거기다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 곽재우와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와
전설을 음미할 수도 있어 풍광과 사색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명품 산길이다
또한 조선시대부터 명성이 자자하여 적벽 아래
강변 숲속에는 여섯 개 누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백마산성은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였
임진왜란 때는 홍의장군 곽재우가 북진하는
왜군을 맞아 한 달 이상을 버티면서 물리친
유적지다
당시 왜군은 깎아지른 절벽의 백마산성을
도저히 함락시킬 수 없자 물과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옥쇄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또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 여름 백의종군에
나선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으로 가던 도중
이 산성에 올라 천혜의 난공불락 요새인 점을
확인하고ㅈ안심하였다는 이야기가
난중일기(1597년 7월 19일)에 기록돼 있다
날머리 가까이에 성주이씨 문중의 ‘안곡서당
(경남 문화재자료 442호)이 있고 차로
조금만 이동하면 ’도전리마애불상군
(경남유형문화재 제209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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