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경산[347m], 황령산[荒嶺山 427m], 사자봉[400m], 갈미봉[269m],
금련산[金蓮山 414m], 배산[盃山 256m]
위치 : 부산광역시 남구 부산진구 연제구
일시 : 2024. 12. 20.(금) 나홀로
날씨 : 맑은날
산행코스 :전포역8번출구-보현사-레포츠공원-행경산-황령산-봉수대-사자봉-바람고개-갈미봉-편백숲길-안창약수터-금련산-부산여상-배산역-배산연안동고분군
특징, 볼거리
황령산
전형적인 도심지 야산으로 부산광역시 남구
수영구 연제구 부산진구에 걸친
시의 중심에 있으며 금련산맥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체육시설과 야영장이 잘 갖추어져 있다
산정은 비교적 평탄하며 북동쪽 금련산
북서쪽 행경산과 연결되어 있으나
부산에 사는 사람들은 굳이 엄밀하게
구분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일상적으로
구별 없이 전부 황령산이라 부르는데
올라가 보면 능선이 완만하게 연결되어있는
느낌이기 때문인 듯하다
고대시대에는 진한 국가 중 하나인
거칠산국이 자리 잡았던 곳으로
동래에서 황령산 일대에 이르는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다
산 이름은 동국여지승람에 누를 황(黃)자를 써서
황령산(黃領山)으로 기록
현의 남쪽 5리에 있다고 하였고,
동래부읍지에는 거칠 황(荒)으로 기록하여
화시산으로 뻗어 있으며
마하사가 있다고 하였다
부산 토박이 민간에서는 망령산(亡靈山)이라
불렀는데 부정적이다 하여 고쳐 부르기 시작한 것
동래부 때인 1422년(세종 7)에는 군사상
중요한 통신수단인 봉수대(봉화를 피우는 곳)가
산 정상에 설치되었다
이 봉수대는 동쪽으로 해운대의 간비오산 봉수대
서쪽으로 구봉 봉수대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북쪽으로는 범어사 계명봉 봉수대 등과
연결하도록 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해마다 산신제와 더불어
봉화를 재현하고 있다
산에는 광산이 여럿 있었다
광안4동의 공무원교육원 자리에 있던
광산이 규모가 가장 컸는데
일제강점기에 구리와 금을 캐던 광산이다
천연기념물 제267호로 지정된 구상반려암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암석으로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에서 식어 만들어졌다
반려암이 있는 쪽 루트는 서면 옆의 전포동 쪽에
가깝다
금련산
부산광역시 연제구 수영구 남구에 걸쳐있는
금련산맥의 전형적인 야산
옆의 황령산보다는 약간 낮다
부산시민들이 황령산이라고 말하면
실제 황령산뿐만 아니라 옆의 금련산까지
포함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두 산의 봉우리는 거리도 멀지 않고
도로로 금방 연결된다
산자락에 금련산청소년수련원과
폐업한 지 오래인 실내 스키장
스노우캐슬이 있다
산 정상부에는 송신탑과 헬기 착륙장이 있고
광안리해수욕장과 광안대교 방면 전망이 좋다
부산불꽃축제를 감상할 때도 최적의 장소지만
그 날엔 다른 사람들도 다들 노리기 때문에
자리잡기는 매우 어렵다
마하사 등의 절이 있고 예전에 사찰이
있었지만 없어졌다는 말이 있다
배산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과 수영구 망미동에
걸쳐 있는 산
정상부는 해발 256.3m로 목포시 유달산보다
조금 높고 서울특별시 남산보다 조금
낮은 정도다
부산 중심부의 한복판에 위치한 산답게
등산로가 곳곳에 포진되어 있고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이 정상 부근까지
설치되어 있어 현재는 사실상
주민 체육공원 정도의 기능을 수행하는 산이다
배산은 해발 고도 250m의 낮은 산이지만, 해운대구와 연제구, 동래구, 금정구 등 부산 시내 일원이 조망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39호인
부산 연산동 고분군이 배산 서북부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의 성격으로 볼 때
이 지역의 수장들이 묻힌 유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부산 동래 지역으로 비정되고 있는
거칠산국이 탈해 이사금 때 인물인 거도에 의해
이미 신라에 복속된 것을 감안하면
가야의 정치적 중심지로 보기는 어렵고
일찌감치 신라의 일부로 편입된 지역이지만
신라의 영향력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던지 지역
수장들의 영향력이 오래 유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는 동래현의 치소지가 이 산의 남쪽에
들어섰다
현재의 망미동 부산지방병무청이 위치한
자리에 동래현 치소지가 있었으며
후에 동래부가 지금의 동래구 칠산동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동래 지역의 중심으로 기능했다
또한 고려 의종 때 측신 정서가 동래로
귀양 왔을 때는 이 산의 동북쪽 끝자락에
과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오이를 키우며
왕의 부름을 기다리기도 했고
이 결과 우리 문학사상 유일의 작가가 알려진
고려가요인 정과정이 탄생했다
이 노래가 충신연주지사(연군가)의 시조격으로
정철의 가사문학에 영향을 준 작품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만악의 근원인 셈
지금은 도시개발에 따라
배산 동쪽이 끊어지는 바람에
정과정 유적은 배산의 일부라기보다는
수영강변의 유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찾기가 쉽지만 이 영향으로 토곡을
가로질러 온천천을 따라가는 길의 이름이
과정로로 명명되어 있으니
의외로 역사적으로 의의가 깊은 산이다
동래부지에는 척산(尺山)이라는 이름의 산이
등장하는데 아마도 이 산을 일컫는 말로 추정된다
배산성지
연제구 연산동에 위치한 배산의 중턱과
정상부에 있는 옛 성터로
이 지역의 옛 지명인 거칠산국시대의
유적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배산성의 성곽은 배산의 정상부를 둘러싸는 토성
성의 사면과 능선을 아우르는 석축 성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축성 기법이나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볼 때
배산성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신라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1972년 06월 26일
부산광역시 시도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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