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및 산 이야기/근교 의 산

낙남정맥의 끝자리 녹산 봉화산을 오랜만에 올라본다

갈파람의별 2020. 4. 1. 02:13

늦은 아침 녹산봉화산으로 가기위해 집을 나선다

두릅을 딸수 있을지 기대를 조금 하면서

하도 오랜만에 오르는 봉화산 보통 성고개에서 녹산 보건소까지 산행을 즐기지만

이번에는 장고개에서 장락포까지 산행을 하기로 하고 하단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구량에서 하차를 하고

장고개입구에서 산행을 시작 한다


장고개 : 강서구 송정동 송정경제자유구역에서 미음경제자유구역과 부산신항배후국제산업물류도시 일반산업단지가 있는

강서구 생곡동과 미음동을 지나 범방동으로 이어지는 58번 도로(신 도로명; 가락대로)가 지나는 고개이며 부산광역시 강서구

구랑동과 송정동의 경계를 이룬다. 강서구 송정동 새피골과 무니골이 장고개 사이에 있다.

‘장곡’이라고도 불리는 이 고개에는 가지가 옆으로 뻗은 노송이 있어서‘반송장고개’라고 불렸다. 또한 반송장이란 지명은

이곳에 5일장인 반송장이 생기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5일장을 찾는 주민들이 자주 이용한 고개였다.


지금은 마음공단으로 변해버린

옛 구량마을 녹산초등학교 터에는....



들머리 한참을 찾아왔다


콘크리트포장 가파르게 올라 보니 옛길이 나온다



싱그러움 벌써 연초록 잎들이 피어난 숲길을 따라


산벗꽃


능선첫번째 봉우리에서 바라본 봉화산 정상


눈부시게 보이는 아랫 동네와 서낙동강 하구


봉화산을 배경으로



신호공단과 가덕도


지난주 걸었던 옥녀봉과 풍상산 아래로 마음산업단지



두릅


산양마을 갈림길을 지나고



봉화산아래 체육시설

잠시 체력단련도 하고






봉화산 오름 계단길





정상이 보인다



성화예산봉수대 : 소재지 : 강서구 생곡동 산61번지봉수제도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고종35년(1898) 전화 개설로 폐지 될 때

까지 국가 위급을 알리는 중요한 군사 통신 방법으로 사용되었으며,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횃불을 올려 신호하였다.

고려 의종3년(1149) 제도화 되면서 평상시에는 횟불(연기)을 1번, 적이 나타나면 2번, 국경에 접근하면3번,국경을 넘으면4번,

접전하면5번으로 구분하여 서울의 경봉(목멱산:남산)에 연락하였다.

성화 예산 봉수대의 설립년대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 세종7년(1425) 전국의 국경 지역에 봉수대를 설치할 당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금단곶보의 주둔 병력이 관장하였으며, 남쪽의 가덕도 봉수를 받아 북쪽 분산 봉수에 연계한 연변 봉수대였다.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선인들의 향토수호 의식과 국토방위정신을 기리며 계승하기 위해 1991년 9월 강서구청에서 옛터에

복원하였다.




하트하트~~


흉물스럽게 보이는 생곡 매립장과 서낙동강 둔치도

멀리 김해시가지가 아련히 보인다


금병산 옥녀봉과 풍상산


낙남정맥길 불모산에서 보배산까지 능선길도 보인다

보배산(보개산[寶蓋山]; 479m) : 부산 강서구와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이다.

보배산 동북쪽 기슭에 흥국사가 있는데 옛 명월사[明月寺] 터에 1956년 중건된 사찰이다. 명월사는 가락국 때 수로왕과

허황후가 관련이 있는 가야불교의 발전지이다. 수로왕이 허황후를 받아들여 산신에게 폐백을 드린 산이 명월산[明月山]이며,

그 산기슭에 위치한 절이 명월사이다. 이를 입증하는 자료로 대웅전 왼편에는‘가락국 태조왕 영후 유허비’가 남아 있다.

또 요사채 옆 극락전에는 석탑의 한 탑신으로 쓰인 석탑면석인 사왕석이 있다. 두 마리의 뱀이 부처를 호위하고 있는 형상이다.

이는 남방불교 전래설을 입증한다. 흔히 산꾼들은 흥국사를 보배산 북동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고 하지만 흥국사 안내판과

주지 서봉 스님은 절 뒷산을 명월산[明月山]이라고 했다. 정상 직전의 전망대에 서면 부산의 미래 서부산권의 위용이 한눈에

펼쳐진다. 정면에 가덕고와 연대봉이, 가덕도 우측 뒤로 거제도가, 그 앞으로 올해 조기 개장한 신항 북측 컨테이너부두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 앞으로 녹산산단과 용원CC가 보인다.



가야할 능선길 뒤로 금정산 백양산  배경으로 부산의 도심도 보이고


낙동강 넘어 승학산아래로 사하구일원과  명지신도시가 눈이부시게 보인다


화전 신호공단



그리고 신호공단과 가덕도


신항과 진해만


시원한 봄바람을 맞으며 조망에 빠져 잠시휴식도 하고 노적봉으로 가는길..




뒤돌아본 봉화산



전망대에 올라




노적봉이 가까이 보인다


서낙동강 하구



노적봉으로 가는길


향나무숲


갓시붓꽃


철탑이 있는 노적봉 정상



하산중 강건너 풍경


아래 녹산 수문이 보인다

녹산수문 : 낙동강 본류인 서 낙동강 입구를 막아서 농업용수로 쓰도록 강물을 유입하는 대저수문을 만들고 하류에는 염도

높은 바닷물 유입을 차단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하구 둑이 된 녹산수문을 만들어 농업용수를 확보하여 낙동강 삼각주를 김해

평야로 만들게 하였다. 설치년도: 1934년 / 배 수: 문비:10련 / 수 문: 중량25톤, 전동기 15HP / 목 적: 관개배수, 조절배수 /

수문위도로: 부산-진해 국도.그리고 지금은 노후되어 1994년 12월 31일부터 1997년 11월 22일까지 3년에 걸친 보수공사를

하여 지금은 수문으로 재설치 되었다.


녹산나루 : 부산광역시 강서구에서 녹산수문이 있는 곳으로 가다보면 소형어선들이 즐비해있는데 이곳이 옛 녹산 나루의

흔적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낚시를 즐기는 소수의 주민들도 있었으며 나루의 기억은 연세가 있으신 분들에게 구두확인은

가능하였으나 여타의 자료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이번 답사에서 나루의 현 모습으로 가장 뚜렷한 변화는 다리의 존재이다.

일부는 이동의 흔적이 있으나 그는 다리의 특성상(차량의 이동) 조금 돌아가더라도 강과 강사이의 폭이 좁은 곳을 통해 건설된

경우도 존재하나 녹산의 경우 실재 교량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이에 수문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앞서의 신포 나루

터의 위치 역시 수문이 존재하고 신포나루는 을숙도나 명지IC 등이 우선이 되나 녹산의 경우 수문이 우선이 된다.

또한 신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소형어선이 존재한다. 토진나루의 경우 강의 맞은편의 명칭이 존재하지 않으며 다수의

주민들이 토진나루를 기억하고 있었으며, 하풍 나루의 경우 60세 이상의 주민들만 일부 기억하는 것으로 보이며 실재 나루의

위치는 조사지역의 상부에 존재하였다고 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며 보다 상류에 있다는 증언이 있었으며 하풍나루

역시 기억하는 주민은 다수 있으나 다른 명칭은 알 수 없었다.

불암나루의 경우 불암나루라는 것을 기억하는 주민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낙동 문화원에서 불암나루의 위치를 그곳으로 추정

하고 있었으며 불암동의 일부 주민들 중 김해와 부산을 잇는 곳으로 그곳에 나루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다수 존재

함. 낙동 문화원에서 불암나루(감해)의 맞은편은 대서진 나루(부산)라 판단하고 있었다.

또한, 명지IC의 신포나루와 하단의 나루 등 각각의 나루의 명칭이 존재하였으나, 이는 보다 큰 나루의 경우로 판단되며 나루의

명칭은 대부분이 그 지역의 명칭을 따르며 그에 관한 자료는(사진) 대부분 존재하지 않았으며 각 행정구청에서는 자료의 공유

에 관하여 문의를 하였으나 일부 자료(극히 일부)이외에는 모두 자료 존재의 여부를 부정한다.





체력단련장을 지나니 산길 험로로 변해지고


유유히 흐르는 서낙동강



어느새 장락마을에 도착 한다

오랜만의 봉화산 산행 멧돼지도 만났던 혼산이었지만 즐거움으로 마무리를 한다

   渴波濫 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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