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산행기록

제 1904차 산행 부산의산 100봉 일곱번째 황령산 주변의 산

갈파람의별 2023. 4. 20. 01:02

배산[盃山 256m], 백산[白山 129m], 홍곡산[126m], 샘물터산[105m], 천제산[우룡산 140m]


위치 :  부산 연제구, 수영구, 남구
일시 :  2023. 04. 19.(수) 나홀로
날씨 :  흐림 간혹 부슬비 약간
산행코스 :  
연산중학-옛골공원-고분군-배산-영주암-연꽃공원
민락역-백산-옥련선원-mbc
석포초교-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문수사-홍곡산-남광시장-샘물터산-성지고교-남파랑길-신연초교-우룡산공원-천제산-대연중학-못골역

특징, 볼거리
배산(盃山)
금련산에서 북쪽으로 약 1.5km에 위치하는 산으로 해발 254m. 산지의 고도와 규모에 비해 산정 부근의 경사가 급한 것이 특징이다 동쪽에는 배산에서 삭박작용으로 분리된 해발 80m의 토곡산이 수영강과 평행하게 놓여져 있다
수영구와 연제구에 걸쳐있는 유서 깊은 산으로 배산이란 이름은 술잔을 엎어놓은 꼴이라 한데서 유래되었다 동래부읍지에는 “동래부의 남쪽 5리에 있다 황령산으로부터 뻗어 내렸다 겸효대가 있다”고 했는데 그 겸효대는 지금 그 흔적이 없어졌다
산 중턱에는 옛 거칠산국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배산성지가 있으며 이 지역이 옛 거칠산국의 중심지였다
동래부지에 ‘척산(尺山)’이라 기록된 산이 이 산으로 보고 있으며 나이 많은 노인들은 ‘절미산’ 또는 ‘잘뫼산’이라고도 하고 있다 위치는 국군부산병원에서 연산로(28 지방도)를 따라 연산동 방향으로 550m 거리의 우측편 도로를 따라 35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겸효대
겸효대(謙孝臺)는 연제구 연산동 산38-1 일대의 배산성지(시 기념물 제14호)가 있는 부근의 아름다운 경치가 있었던 곳이다 겸효대에 대한 기록은『동국여지승람(1481)』고적조에는 "동래현 남쪽 5리에 있다 하고 선인인 김겸효(金謙孝)가 노닐던 바 있어 그리 이름하였다"고 한다 또『동래부지(1740)』산천조에는 "척산을 배산(盃山)이라고도 한다 동래부의 남쪽 5리에 있는데 위에 겸효대(謙孝臺)가 있다"라고 하였다 역시『동래부읍지(1832)』의 고적조에는 겸효대를 "동래부의 남쪽 5리에 있고 황령산에서 이어진 곳에 겸효대가 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옛 기록에 의하면 오늘날 연제구 주산으로 연산1동과 6동의 남쪽 산인 배산에 김겸효라는 선인이 기거했던 겸효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고려 때 좌사대부가 되어 1366년(공민왕 15) 정언(正言) 이존오(李存吾)와 함께 당시의 실력자 신돈을 탄핵했다가 살해될뻔 했으나 이색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고 동래현령으로 좌천되어 이곳으로 부임한 정추(鄭樞)의 겸효대 시(詩)가『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배산성지
배산성지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호('72. 6. 26 지정)로 행정구역상으로 연제구 연산동 산38-1-6의 일원에 위치하며 성둘레는 110m 면적은 9.238㎡이다 지금의 양정로타리에서 수영사이의 동북방향에 있는 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이 성지에 따른 기록도 없고 정식 학술발굴조사가 아직까지 실시되지 않아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가 없다 연산동의 배산에 있는 고성지(古城址)는 옛 지명인 거칠산국(居漆山國)시대의 유적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삼국사기』거도열전에 보면 "신라 4대 탈해왕 때 거도(居道)라는 장수가 거칠산국을 정벌하여 신라에 병합하고 거칠산군을 두었다"고 하였다 이 기록에 나타난 시대는 고증을 요하는 문제이지만 신라에 병합되기 전에 부족국가시대인 것만은 추측이 가능하다
이 고성지(古城址)가 있었던 부근에는 삼국시대 때 조영된 연산동고분군이 있어 성터와의 관련이 주목된다 단 성지의 규모와 축조방법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 혹은 그 이전에 축성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배산성은 배산의 허리 부분과 정상에 각각 성을 쌓은 쌍가락지 모양의 이중성으로 토성이다b지금은 토성의 기초 부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성벽은 산 아래에서 나선형으로 돌아오도록 지형에 따라 성을 쌓았다 산 정상 바로 아래는 폭 2m 정도의 웅덩이가 있는데 이는 그때의 식수원으로 추측하고 있다
연산동 고분군
연산동 고분군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호('72. 6. 26 지정)로 연제구 연산동 산 70번지 일대에 분포해 있다 배산의 북쪽으로 뻗어나온 50m 전후의 능선 정상부를 따라 대형성토분구를 가진 고분 10여 기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대형분들 주변의 구릉 경사면에는 중·소형분들이 배치되어 있다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때 철제갑옷과 투구들이 출토되어 고대 한·일관계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서 국내외 학계의 관심의 초점이 되어왔다
이 고분군의 정확한 성격 파악을 위하여 1988년 경성대학교 박물관에서 8호분을 부산여대(현 신라대학교)박물관에서 4호분을 조사하였다 당시 수습된 유물들을 살펴보면 토기류로는 고배 기대 대부장경호 원저단경호 뚜껑 등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신라토기이다
철기류로는 4호분에서 화살통 금동금구편 철도자 철촉 유자이기편 등이 8호분에서는 주곽에서 철갑 대도  철촉 철부 등의 무구류와 금동장행엽 등자 등의 마구류 및 유리제의 경옥 등이 주피장자의 목부분인 남쪽에서 출토되었고, 부곽에서는 다수의 판갑편이 출토되었다
한편 일제강점기 때 발견된 갑주류와 8호분에서 출토된 찰갑 판갑 등의 갑주류에서 알 수 있듯이 수장층은 무장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권력과 군사력을 동시에 장악/행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토기들이 같은 시기의 신라토기와 동일한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이 신라의 영향권 안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와 같은 고총고분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지방의 기존 지배계층에게 상당한 자치권이 부여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현재 남아 있는 부산지역의 유일한 고총의 원형서토분구 유적이다

백산(白山)
민락동의 뒷산으로 해발 129.5m. 백산이란 수영만과 수영강에서 안개가 짙게 끼일 때는 산 전체가 하얗게 보이기도 하고 흰구름이 이 산을 덮을 때는 하얀산이 되어 버리기 때문인데서 비롯된다 지금의 수영교 부근이 옛날에는 모두 갈대밭이였는데 이곳에 학들이 날아와 먹이를 찾고 놀다가 이 산에 둥지를 튼데서 백학산(白鶴山)이라 했고 후에 이를 줄여서 백산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옛 이름인 향산(向山)을 잘못써서 白山이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동래부지 나 동래영지에도 백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산 정상에는 호랑이 굴이 있었는데 지금은 무속인들이 주술하는 곳이 되어 있으며 백산의 형상이 마치 수영을 버리고 도망가는 사자의 모습이라 하여 수영지역의 번영을 기원하는 뜻에서 수영야류 제4과장 사자무 과장에는 호랑이를 사자의 먹이로 제공하는 특이한 점이 있다
1998년 5월 24일에는 부산을 가꾸는 모임에서 조선시대 좌수영 수군이 바다를 침략하는 왜구들을 살피는 망대가 있었던 곳을 기념하는 백산 점이대를 산 정상에 세웠다

홍곡산
감만 여자중학교 뒷산으로 해발 125.7m 용당동과의 경계를 이루고 부경대학교 용당캠퍼스가 자리하고 있다

샘물터산
지금은 폐교가 되어있는 외국어대학교 용당캠퍼스가 자리하고 있다

천제산
지금의 부산공업고등학교가 있는 뒷산을 말하며 남구의 담장역할을 하고 있다
우룡산 황령산의 지맥으로서 문현고개를 지나 우암동까지 뻗어 있는 산. 지금은 산 중턱까지 주택이 들어서 있고 말단은 해안선의 매립으로 제7부두가 자리잡고 있다 고 하였으나 지금의 천제산  정상에 우룡산공원이 조성된것을 보아서는 천제산과 우룡산은 같은 곳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