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및 산 이야기/경상도 의 산

합천의산 대야성산, 갈마산, 대야성이 있는 매봉산 덤으로 신글산까지

갈파람의별 2023. 5. 10. 18:21

오랜만의 한마음 님들과 함께 하는 산행 합천의 산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치열한 접전지 합천 대야성을 찾는다
합천읍 황강건너 대야성산으로 오르는 들머리
덥다  벌써 여름이 코앞에 온듯 하다

 
동아지도에는 여기를 대야성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해발167m 삼각점이 있는 곳이다

 
ㅎㅎㅎ 그러면 그렇지 삼각점을 지나고 거의 천연림속 간간이 길흔적을 찾아 나간다
덤불속 산길 시작이다

 
대야성산 정상을 겨우 찾고 다시 하산을 한다
대야성은 기존에 알려진 매봉산이 아닌  이곳 대야성산(大耶城山) 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황강 남쪽 산자락의 신라시대 산성유적과
신라 고분군이 있는 곳이 대야성 유적이라는 것 때문 이라지만 신빙성은 적다

 
하산길 처음엔 희미한 흔적이 있지만 결국 감각적으로 길을 만들어 내려온다

 
합천대로에서 아래 생태통로를 지나고 철조망을 넘어 정양늪 유원지로 진입을 한다

 
잠시 정양늪 유원지 시원한 숲길을 걷기도 했지만 ㅎㅎ
정양늪 생태공원은 황강의 지류인 아천천의 배후습지이며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다양한 동 식물의 서식지로 생물학적 생태학적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습지이다


합천에서 유명한 중화요리점 화담반점을 그냥 지나칠수가 없다
우아하게 청요리로 점심을 먹고 ..

 
지방도로 1026호 황계폭포로를 따라서 뙈약볕길 대남고개까지 걷는다
시간이 많이 남을듯 해서 갈마산으로 오르질 않고 신글산 봉우리 하나더 올라볼 요량이다

 
황강 건너편 대야성이 있는 매봉산이 보인다

 
신글산 오름길 ㅎㅎ 거의 길이 없다

 
신글산 정상 표식이없어서 산이좋아 리본을 하나 걸어두고 인증샷
신글산  지도에도 표기가 없는 산이고
산명의 내력도 알수없다

 
대담고개로 돌아 내려와서 갈마산으로 오른다

 
이정표가 보이고 길도 훌륭하게 조성이 잘 되어 있다

 
갈마산 정상에서 하트~~

 
합천읍을 감싸고 유유히 흐르는 황강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 유일하게 합천으로 모두 지어진 주소이다


갈마산의 유래는 물을 먹는 말 모양의 지형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지고
이곳은 갈마산성이 있다
642년(신라 선덕여왕 10)에
백제 장군 윤충이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쌓은 성이라고 전한다
둘레 약 500m 정도의 석축성이나 대부분 무너져 내리고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황강 징금다리쪽으로 바로 내려갈까 망설이다가
지도대로 갈마산 끝까지 가서 황강변길을 걷기로 많이 돌아 가지만...


시원한 솔밭길


황강 마실길을  따라서 황강 징검다리를 찾아
또 뙈약볕 길 에효 ㅛᆢ
한참을 걷는다


망개 친구와 함께


황강물길을 따라서


황강을 건너는 징검다리
대단하다


징검다리를 건너 일해공원을 지난다
일해(日海)는 합천 출신인 고 전두환 대통령의 호
일해공원은 체육시설로 조성되어잇다


대야성 함벽루를 찾아간다

대야산성(大耶山城 시도기념물 )은 신라 제24대 진흥왕 당시 백제의 침공을 막기 위해 지금의 합천읍 일대 해발 90m의 매봉산 정상을 중심으로 흙과 돌을 이용해 성을 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던 군사적인 요충지였다
신라의 서남쪽 방어와 대백제 공격에 있어 신라 가야 백제의 낙동강유역을 사이에 둔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합천8경 중 제5경인 함벽루(푸르름(碧)에 젖은(涵))
고려 충숙왕 8년(1321년) 김영돈이 세운 누각
처마의 물이 황강에 바로 떨어지는 구조가 유명하다
누마루에 앉아 황강을 눈에 두면 마치 배를 타고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합천이 고향인 남명 조식을 비롯해 퇴계 이황 우암 송시열 등이 현판에 글을 보탰다


뒤쪽 암벽에 각인된 함벽루라는 글자는 우암 송시열의 것이다
남명 조식은 함벽루라는 시 한 수도 남겼다
남곽자(南郭子)처럼 무아지경에 이르진 못해도
강물은 아득하여 알 수 없구나
뜬구름의 일을 배우고자 하나
오히려 높다란 바람이 흩어 버리네


함벽루를 지나면 연호사가 보인다
연호사는 합천을 대표하는 해인사(802년)보다 159년 앞선 643년 와우선사가 세운 천년이 넘는 절이다


산성을 삥도는 길을따라 뒤쪽에 있는 죽죽비

백제 윤충 장군이 1만 대군으로 성을 공격해오자 김춘추의 사위였던 대야성 도독 김품석은 처자식을 죽인 후 자결한다
2000명의 군사로 1만 명의 적을 상대하기 역부족이라며 항복을 권할 때 김품석 휘하 장수였던 죽죽은 이같이 말하면서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를 한다
"나의 아버지가 나를 '죽죽'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차가운 날씨에도 시들지 말며 꺾일지언정 굽히지 말라는 뜻이다 어찌 죽음이 두려워 살아 항복하겠는가"

죽죽의 높은 뜻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1644년(인조 22년)에 높이 1.4m 폭 54cm의 화강암으로 만든 죽죽비(竹竹碑)를 세웠다


죽죽비각 옆에 충장사가 있다
충장사는 642년(신라 선덕여왕 11년) 대야성에서 전사한 신라 충신 죽죽(竹竹)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충장사를 지나 산길로 오른다
대야산성 제일 높은곳(매봉산)으로


정상 아무른 표식이 없다
마지막 인증샷을 남긴다

무더위와 긴 도로길도 걸어면서
지치고 발바닥도 아팠지만
보람도가득했던 산행과 트레킹 이었다

渴波濫 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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