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및 산 이야기/금정산

1월 26일 금정산일원산행 2

갈파람의별 2013. 1. 27. 00:52

만덕으로 가는길 한적한 숲길이다

 

 

낙동정맥길의 기암들

 

 

 

 

 

 

석불사가 보인다

 

 

 

멀리 해운대 앞바다도 보이고

 

 

 

부산항과 영도까지

 

 

김해들판과 낙남정맥의 산군들

 

 

석불사가 좀더 뚜렷히 보인다

 

 

장산

 

 

 

 

전망바위위에서

 

 

전망바위에도 이런 테크시설을

 

 

 

 

 

 

 

 

 

전망바위아래 샘터

 

 

 

 

만덕고개 위로 인공터널을 만들어 금정산군과 백양산군을 연결한 새로운 산행로

 

 

좌측으로 오르면 철탑봉으로 올라가는길이지만 오른쪽으로 우회해 간다

 

 

 

 

쇠미산 늪지대 봄철이되면 산개구리 울음소리가 즐거움을 주는곳

 

 

조금지나면 구민의 숲이 나온다

 

 

 

구민의숲을지나 왼쪽으로 가파른길로 올라간다 쇠미산으로 오르기위해서 이다

 

 

 

 

쇠미봉 베틀바위

 

 

 

베틀굴 길이약20m  되는 제법 깊은 자연 바위동굴이다

 

 

 

베틀굴옆 기댄바위

 

 

쇠미산 정상이보인다

 

 

 

쇠미산

금정봉(金井峰, 금용산, 쇠미산)은 동래구에 소재하고 있는 산 중 가장 높은 산으로서 해발 399m이다.

 금정봉은 바다를 향해 있는 쪽은 매우 가파르고 금정산쪽으로는 능선이 곱게 뻗어있다.

 금정봉에 대한 옛 기록을『동래부지(1740)』산천조에 보면, "금용산은 동래부 서쪽 5리에 있다"라고 했다.

 금용산의 "金"자는 신라에서 "쇠"라 훈차(訓借)하여 많이 쓰여진 것으로 "金川, 金惱"는 다같이「쇠내」

 로 읽으며,「금정」을 「쇠잣」으로 읽는 것 따위가 모두 그런 유례인 것인다. "용"자는 솟는다는 뜻이나

"솥"으로 읽어 마땅하다. 新羅古歌『균여전미찬여래가(均如傳彌讚如來歌)』에「일념악중용출거량

 (一念惡中涌出去良)

 d이란 구절은「일념악해솟나가라」로 읽지만『계림유사』에 보면 "왈한세라" 했다.즉,

 漢은 백색이며 歲는 "쇠"를 말한 것이며 "심일급흔(深日及欣)"이라 했고 또 박인을 朴紗賢이라 기록했을

 뿐 아니라, 吉語에 "屈自"는 大城의 뜻이며 『莫阿』는 마을의 뜻이 된다. 신라대의 우리말에 대한 한자 빌림은

 상상외로 황당했던 것임을 알 수 있으리라. 이 "쇠솥이뫼"의 관계로 고려 의종조와 조선초기에 들어 "富山浦"라

 기록했지만 "富"자는 "釜"와 동음인데다가 '訓'도 거의 같은데서 잘못 기록된 것에 불과하며 이런 예는 그 시대

 에는 허다했던 것이다.

 이 금용산을 일러 '쇠미산'이라 호칭하는데 그 이유는"쇠솥이뫼"가 "쇠뫼"로 "쇠모"가 다시 "쇠미"로 와전된 것이다.

 쇠미산 산정을 金井峰이라고도 불리는데 산정상 바로 밑에는 넓이가 80여평이나 되는 특이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덕석바위'라고 부르며 이 바위 아래에는 약 25m의 동굴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여인들이 피난해서 군포를 짜서 전장에 나가 있는 낭군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

 이 동굴은 '베틀굴'이라고 불려 오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시 주민들이 왜군이 올 때마다 피신한 곳이며 굴입구에

항상거미줄을 쳐주었기 때문에 왜군들도 속았다고 해서 그 뒤로부터 이 산을 '생명산'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옛날
 이산에쇳물〔철물〕이 많이 나왔다고 해서 '쇠미산'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쇠미산에서 금정산 상계봉을 건너본다

 

 

낙동강건너 신어산군들

 

 

 

쇠미산정상에서 장산을

 

부산앞바다와 영도

 

 

엄광산 구덕산 승학산

 

 

어린이대공원쪽으로 하산하는길

 

 

지척에 황령산이 보인다

 

 

 

날씨가 너무맑아 멀리쓰시마섬(대마도)가 가까이 보인다

 

이렇게 하루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