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록들

7월28일~29일 팔공산종주

갈파람의별 2010. 2. 10. 17:29
팔공산 종주기 / 2007. 7. 28~29

 

   갈파람님과 김선재님 그리고 모개를 태운 7월28일 오전 6시22분 영주행 무궁화호 열차가 부산역을 출발하였다. 본래 6시30분까지 모이기로 했는데, 15분쯤 부산역 대합실에 도착하니 두 분이 먼저 도착하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출발하는 표를 끊어 열차에 올라탄 것이다. 동대구역에 도착하니 8시쯤. 조금 기다리니 갈파람님 지인(知人)께서 차가 몰고 나왔다. 30여분을 달려 다비암 앞에서 내렸다. 다비암은 본래 계정사라는 이름의 사찰인데, 지금도 길가 안내판에는 계정사라고 되어 있어, 모르고 지나쳤다가 되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시계를 보니 9시5분. 가슴 떨리는 ‘가팔환초’ 종주의 첫발을 내디뎠다. 급격하게 체중을 줄이느라 굶기도 하는 등 무리를 한 김선재님의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해 조금씩이지만 자주 쉬는 시간을 가졌다. 갑자기 커다란 바위가 눈앞에 나타났다. 뒤편에 설치되어 있는 계단을 오르니 수백 명은 족히 수용할 만큼 널찍하다. 첫 목적지인 ‘가산(架山)바위’이다. 10시55분. 다비암에서 약 3.5km 거리.

 

   날씨는 괜찮았다. 며칠간 ‘폭염경보’까지 내려졌지만 구름이 끼어 그렇게 무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첫날은 산행 내내 수풀이 무성하여 모자를 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고, 능선길에서는 오히려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안개가 많이 끼어 전체적인 조망을 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갈파람님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멀리 볼 수가 없어 애로를 겪었다.

 

   가산산성 성벽 위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정상을 향했다. 걸으면서 성벽이 의외로 잘 보존된 것을 보며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아래에 등산로가 있는데, 등산객들이 이렇게 성벽을 따라 자꾸 걸으면 보존하기가 힘든데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섰다. 왼쪽으로 꺾어 중문(中門)으로 가야하는데, 직진하여 동문(東門)으로 가는 길로 간 것이다.

 

   물론 갈림길에서 옆에 가던 등산객에게 정상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분 대답이 “직진해서 가도 됩니다”였다. 물론 맞긴 맞다. 동문으로 가서 다시 옆으로 뒤돌아 정상에 오르면 되니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안내였다. 정상을 거쳐 한티재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가다가 갈파람님이 길을 잘못 든 것을 확인했다. 가산이 왼쪽 저 멀리로 보였던 것이다. “되돌아갑시다!” 10여분을 되돌아와 다시 갈림길에 섰다. 결국 잘못된 길로 인해 20여분이 소요된 것이다.

 

   왼쪽으로 꺾어 조금만 가자 석축(石築) 아치문이 나타났다. 중문(中門)이다. 기념사진 한 장 찍고는 부지런히 걸었다. 갈림길이 나타나고 이어서 오른쪽에 조그마한 정상 표지석이 있다. 11시50분. 총 5km 정도를 걸었다. 그런데 이 정상 표지석이 본래 여기에 있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표지석을 세운 콘크리트 덩어리째 길 위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표지석의 ‘칠곡 가산 901m’라는 글은 매직펜 비슷한 것으로 써놓았고, ‘한티재 5.4km →’라는 글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아마도 동문에 있던 한티재 가는 길 안내석을 누군가가 여기에 갖다놓고, 거기다가 정상 표시를 해놓은 것 같다.

 

   그렇게 유추할 수 있는 이유는, 이정표를 보면 동문에서 한티재까지의 거리가 5.4km 정도이기 때문이다. 가산 정상에서 한티재까지의 거리는 5.7km 정도이다. 300m의 차이가 난다. 갈파람님의 말에 따르면, 가산 정상석은 갈림길 왼쪽 100m 정도에 있는 용바위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자료에 따르면 이곳이 정상은 맞다. 그래서 누군가가, 용바위가 아닌 정상에 정상석을 세워야 하는데 여의치 못해, 우선 이 표지석을 갖다놓고 거기다 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글을 써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이 표지석은 오래 전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대부분 동문에서 몇 km 거리라는 식으로 동문으로 기준점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새로 만든 이정표도 대부분 동문을 기준점으로 거리를 표시하고 있다.

 

   성벽길을 따라 죽 걸었다. 정말 잘 보존되어 있는데… 이럴 때 좀더 잘 관리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약 1km 남짓 걷다보니 길 양쪽에 높다란 바위가 서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바위’란다. 어느 쪽이 할아버지고, 또 어느 쪽이 할머니인지는 모르겠다. 보는 각도에 따라 사람 얼굴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산 정상 이후 한티재까지는 내리막이다. 가산바위를 지난 후부터는 김선재님의 컨디션도 조금씩 회복되었다. 산행 속도도 조금씩 빨라졌다. 그러나 중간에 네댓 개의 봉우리가 있다. 오르막에서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느긋해졌다. 갈파람님 왈,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산행합시다.” 모두들 찬성이다. 나 역시 김선재님 덕분에 여유롭게 산행할 수 있어 좋았다.

 

   낮 12시40분. ‘치키봉’ 도착. 756m로 가산산성 동쪽 끝이다. ‘치키봉’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아마 6・25전쟁과 관련이 있지 않겠는가 생각할 따름이다. 할배 할매 바위를 지나면서부터 느낀 것이지만, 우뚝 선 바위들이 많다. 동쪽으로 갈수록 바위가 더 많아지고, 그래서 무속인들이 그 기(氣)를 받기 위해 팔공산을 많이 찾는다는 갈파람님의 언급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앉아 쉴 때마다 간식거리를 꺼내 먹었다. 과일통조림 서너개, 육포, 초콜렛 등. 덕분에 점심시간이 넘었음에도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오후 1시50분 쯤. 갈파람님이 갑자기 한 곳을 가리킨다. 조금 떨어진 곳에 노란 표지판이 높다랗게 세워져 있다. 한티재 휴게소 표지판이란다. 자동차 소음도 들려온다. 한티재 휴게소에 도착한 시각이 2시. 다비암으로부터 10.7km, 약 5시간 걸렸다.

 

   밥 먹기 전에 화장실을 찾아 세수부터 했다. 지하수여서 그런지 물이 너무도 시원했다. 비빔밥 두 그릇을 주문했다. 밥이 준비되는 동안 수통에 물을 채웠다. 나는 비닐에 싸가지고 간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고는 휴식을 취했다. 달콤한 휴식. 그러나 덥다. 산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사람 사는 곳은 후텁지근하다.

 

   2시45분 출발. 이제부터는 다시 오르막이다. 한티재가 약 710m 고지인데 앞으로 갈 파계재는 991m, 팔공산 서봉과 동봉은 모두 1150m가 넘는다. 2km(총 12.7km) 떨어진 파계재에 도착한 시각은 3시38분. 그나마 길이 평탄해서 밥 먹은 후임에도 시간이 적게 걸렸다. 그러나 봉우리를 하나씩 넘을 때마다 앞으로 넘어야 할 봉우리들이 눈앞에 가득 차 우리들의 기를 팍 죽였다.

 

   5시25분. 파계재에서 2.9km(총 15.6km)의 길을 1시간 47분 걸려 도착했다. 우뚝 선 바위들이 도열해 있다. ‘톱날바위’이다. 누군가 이정표에다 ‘병풍재’라고 글을 새겨 놓았다.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붙여놓은 이름인가 보다. 처음 두어 개는 사진도 찍을 겸 맛보기로 타고 넘었다. 그러나 워낙 위험해 밑에 나 있는 길로 후퇴했다. 그러나 서봉으로 가는 중간 중간 바위산들이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그 바위를 타고 기어오르고, 로프에 의존해 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어진 서봉(西峰)까지의 길. 약 2.1km(총 17.7km)를 가는데 1시간 40분을 소요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같았다. 1150m의 서봉은 삼성봉이라고도 표시해 놓았다. 그래서 정상석이 2개 있었다. 시각은 7시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동봉까지 갈 것이냐, 아니면 하산하고 내일 동봉을 오를 것이냐를 결정해야 했다. 벌써 10시간 산행을 했지만, 내일 아침에 1167m의 동봉을 오르는 것은 처음부터 너무 힘드는 일이라는 생각에, 동봉까지 오르고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서봉에서 동봉까지는 1.1km(총 18.8km).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안개가 짙게 깔리기 시작한 것이다. 중간의 ‘오도재’에 도착한 것이 7시19분. 이어서 동봉까지 300m를 남겨놓은 지점에 도착한 시각이 7시37분. 급격하게 어두워져 랜턴을 켜고 야간산행을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끝까지 계단이라는 사실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올랐다. 7시48분 정상에 도착했다. 김선재님은 몇 분 뒤에 정말 죽을 고생을 하며 따라 올라왔다. 안개가 자욱한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서봉과 동봉 사이에 팔공산 주봉(主峰)인 비로봉(1193m)이 있는데, 군사시설 때문에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 그래서 등산로로는 1161m인 동봉이 최고봉이 되는 셈이다. 이제는 하산이다. 동화사까지 3.7km(총 22.5km). 갈파람님의 고민이 또 다시 시작되었다. 어둠은 물론 짙은 안개로 하산길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 것이었다. 염불암을 지나면서 중간에 빠른 하산길이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야간산행에다 짙은 안개로 자칫 길을 잘못 들었다가는 엉뚱한 곳으로 빠질 수도 있어, 결국 멀지만 안전한 길로 하산하기로 했다.

 

   하산하면서 놀랐던 사실은 염불암까지의 1.5km가 거의 돌계단이라는 사실이다. 염불암에서 부도암을 거쳐 동화사까지는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내려왔다. 동화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300여m 정도를 가니 집단시설지구가 나왔다. 무더위를 피해 텐트치거나 그냥 자리를 깔고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 깜짝 놀랐다. 덕분에 밤 9시가 넘은 시간에도 영업을 하는 식당이 많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를 시켰다. 먼저 나온 맥주를 한 컵 들이켜니 그때서야 하산한 것이 실감났다.

 

   모텔을 찾아 방 3개를 구했다. 김선재님이 코를 많이 골아 따로 자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덕분에 방 하나에 한 명씩 편하게 잠자리를 할 수 있었다. 샤워를 한 후 돌이켜 보니 참 많이도 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적으로는 12시간 이상, 거리상으로는 가산산성에서 되돌아온 것 등을 포함하면 약 24km 정도 되는 것 같다. 빨리 자야지. 내일도 산에 올라야 하니까.

 

*********

 

7월29일 새벽 4시 조금 넘어 잠이 깼다. 약 4시간 정도 잔 셈이다. 좀더 자야 하는데 생각했지만 잠이 들지를 않는다. 일어나 앉으니 4시30분이다. 그냥 느긋하게 앉아 시간을 보냈다. 전화벨이 울렸다. 갈파람님 목소리다. 5시20분까지 나오란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수통을 꺼내 넣는 등 배낭을 꾸리고서 밖으로 나왔다. 어제 넘어지면서 다친 왼쪽 손목에 조금 통증이 있을 뿐, 전체적으로 몸 상태는 괜찮다.

 

   갈파람님은 두 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다고 한다. 김선재님은 그나마 모닝콜 때까지 푹 잤다고 한다. 그래도 생생한 얼굴을 보니 오늘의 결전도 잘 치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식당은 하는 곳이 없어,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에 햇반을 말아 아침을 해결했다.

 

   오전 6시. 출발이다. 어제와는 달리 ‘탑골’이라는 곳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가면서 염불암으로 가는 길을 묻고 그러면서 올랐다. 지도를 보니, 동봉에서 이어지는 염불봉으로 가려면 염불암 근처에서 치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르고 보니 ‘스카이라인’이다. 팔공산 케이블카가 도착하는 곳이다. 탑골 초입으로부터 거리는 1.2km. 시각은 7시10분.

 

갈파람님이 지난해에 산행했던 길이 잘 기억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스카이라인을 거쳐서 염불암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길을 물어보니 동봉 방향으로 조금 더 간 후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염불암이 있다고 한다. 그대로 진행했다. 그런데 한참을 내려가다가 갈파람님이 갑자기 멈추더니 “이렇게 많이 내려가면 다시 올라갈 때 애를 먹는데”라고 한다. 차라리 동봉 방향으로 계속 가다가 거기서 염불봉으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향을 돌려 옆으로 비스듬히 난 길을 따라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서 그런지, 길이 가팔라서 그런지 너무도 힘이 들었다. 사실은 이 모두가 겹쳐진 것이었다. 어제 동봉에서 염불봉으로의 하산길에서 알 수 있듯이 스카이라인에서 동봉으로 가는 길의 경사 또한 만만찮았다. 게다가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가려고 하니 거의 절벽을 오르는 느낌이었다. 끙끙거리며 얼마를 올랐을까, 스카이라인에서 동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 능선으로 이어진 길도 계속 오르막에다 바위가 많아 쉽게 가지지가 않았다. 물론 어제의 피로가 바위 산길을 더 힘들게 느끼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하루 산행이었다면 재미있는 코스라고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갈파람님은 오히려 신이 났다. 새로운 좋은 능선을 찾았다고. 즉, 우리가 올랐던 길은 본래의 종주코스와는 다른, 스카이라인에서 동봉으로 이어지는 다른 능선이었던 것이다.

 

   한참을 걸었다. 문득 이정표가 보인다. 갈파람님이 어제 하산길에 보았던 이정표라고 기억한다. 즉, 이곳은 네거리로 위로는 동봉, 아래로는 스카이라인, 오른쪽으로는 염불봉, 왼쪽으로는 수태골로 가는 길목이었던 것이다. 어제는 어둠 속에서 이 이정표를 발견함으로써 염불봉으로 길을 잡을 수 있었다. 스카이라인에서 1.4km, 시각은 8시30분. 돌아온 것을 빼고 2.6km를 오는데 2시간30분이나 지났다.

 

   그때서야 갈파람님의 작년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아이스케키를 하나씩 입에 물고는 그것을 파는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다. 동봉 오르는 길 중간에 리치로 연결된, 염불봉으로 빠지는 길이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혹시 아느냐고. 아이스케키 장수는 거북바위로 해서 가면 된다고 대답해 준다. 갈파람님의 기억이 또렷해졌다. 맞다! 거북바위다!

 

   다시 힘을 내 올라갔다. 거북바위 리치는 시간을 많이 소요할 것이므로, 그 아랫길로 가기로 했다. 오른쪽으로 난 길을 확인하기 위해 갔던 갈파람님이 “이 길이 맞습니다”고 외친다. 지난해 거북바위 리치로 해서 갔는데, 도저히 그 길을 가지 못하는 회원들 몇 명이 아랫길로 갔던 기억을 확실하게 되살렸던 것이다. 정말 왼쪽에는 높다란 절벽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얼마 가지 않아 염불봉 바로 아래쪽에 도착했다. 정상부로는 오를 수 없는 곳이어서 일반적으로 그 아래쪽을 정상으로 본다고 한다. 9시6분, 약 300m(총 2.9km).

 

   염불봉에 오르니 어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군사시설로 출입이 통제된 비로봉이 약간 흐리긴 하지만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갓바위가 있는 관봉을 향해 가야 한다. 곳곳에 바위와 리치가 있어 산행속도는 그다지 나지 않았다. 10시22분 신령재, 염불봉에서 1.7km(총 4.6km). 능성재에 도착한 시각은 11시58분, 거리는 2.5km(총 7.1km). 그렇게 높게만 보이던 인봉 아래에 도착한 시각은 낮 12시33분. 능성재에서 1km(총 8.1km) 떨어져 있는 곳이다.

 

   인봉에 오르니 관봉이 바로 앞에 보이는 듯하다. 서둘러 진행하니 갓바위 600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러나 본래 길을 폐쇄하고 약사암으로 내려갔다가 계단으로 다시 올라가게 해놓았다. 폐쇄된 길로 억지로 갈 수도 있지만, 갓바위 쪽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몰라 약사암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한참을 내려갔다가 계단을 따라 다시 올라갔다.

 

   약사암에 도착하니 오후 1시10분. 인봉에서 약 1.5km(총 9.6km) 거리는 되는 것 같다. 물을 보충하고 혹시나 하여 살펴보니 시간과 관계없이 누구든 식당에서 공양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일단 허기진 배를 채우자고 하였다. 밥 한 그릇에 시락국 한 그릇, 그리고 무짠지 몇 조각이 전부였다. 그래도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웠다. 그렇게 식욕이 좋던 김선재님이 밥 반 그릇만 먹는 것을 보니, 대단히 피곤한 것 같다.

 

   이날 우리를 괴롭힌 것은 어제의 피로감에 더하여 무더운 날씨도 한몫하였다. 그 전날은 시원한 기분까지 느낄 정도였다면, 이날은 아침부터 후텁지근한 날씨에 기온도 높았다. 그러니 더 빨리 지칠 수밖에. 처음에 김선재님은 점심밥조차도 먹지 않으려 할 정도였다. 갈파람님이 눈을 부라리며 억지로라도 먹으라고 야단을 칠 정도였다.

 

   약사암에서 다시 계단으로 400m(총 10.0km)를 오르니 갓바위 부처님이 앉아계신다. 1시44분이다. 기념촬영을 하고는 길을 재촉한다. 1.8km(총 11.8km)를 내려와 2시9분에 용주암 입구에 도착했다. 바로 옆의 ‘714봉’으로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200여m(총 12.0km) 정도 올라가면 되지만 산세(山勢)는 여전히 가파르다.

 

   정상에 도착하니 2시27분. 갈파람님이 지도를 꺼내 앞으로 진행할 방향을 확인한다. 올라온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명마산(장군바위)가 진행된다. 그리고 능성고개로 하산하여 다시 환성산과 초례봉으로 진행하게끔 되어 있다. 그런데 팔공산 줄기는 명마산에서 끝이다. 즉, 환성산과 초례봉은 팔공산 줄기와는 무관한 산인 것이다. 갈파람님이 팔공산 종주라는 이름 대신 새롭게 가팔환초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를 714봉에 올라서야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산행대장 갈파람님은 거기서 환성산과 초례봉까지의 산행은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신 명마산까지 가서 하산하느냐, 아니면 여기서 바로 하산하느냐를 고민했다. 714봉에서 명마산(550m)을 거쳐 능성고개까지는 약 3.3km 정도. 그다지 어려운 산행은 아니다. 대신 능성고개에서 차편이 제대로 연결되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명마산 반대편 봉우리(이름은 알 수 없음)를 거쳐 갓바위 주차장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반대편 봉우리는 바위산이었다. 하산을 준비하는데 천둥소리가 들린다. 하늘을 쳐다보니 컴컴해지고 있다.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진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로프를 타고 바위산을 내려오는데 빗방울이 굵어진다. 게다가 돌풍이 몰아친다. 발걸음이 바빠진다. 갈파람님이 조심하라고 고함친다. 아래는 낭떠러지다. 바싹 긴장이 되었다. 차라리 비를 맞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파른 길을 조심스레 내려온다.

 

   10여분 정신없이 내려오니 길이 평탄해진다. 뒤를 돌아보니 봉우리가 우뚝하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 갓바위 주차장이 보인다. 시계를 쳐다보니 3시50분. 둘째 산행은 약 10시간에 걸쳐 진행되었고, 산행거리는 하산길과 스카이라인에서 염불봉 갈 때 다른 길로 들어섰던 것까지 합하면 약 14km 남짓 될 것 같다. 이틀간 22시간에 걸쳐 38km 정도의 팔공산 종주를 했던 셈이다.

 

   명마산으로 하산하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당시 갈파람님의 결단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만약 명마산으로 진행했다면 돌풍을 동반한 소나기 속에 위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714봉에서 본 명마산 하산길도 바위가 줄줄이 이어졌다.

 

   주차장 식당에서 파전과 손두부를 하나씩 시켜 맥주를 한잔했다. 그리고는 동대구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 버스가 ‘능성고개’를 거쳐 가는 것을 확인했다. 후기 제목을 ‘가팔환초 종주’가 아닌 ‘팔공산 종주’라고 붙인 이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그리고 우리 눈으로 확인했듯이 ‘가팔환초’는 별 의미가 없다. 이번에 많은 고생을 하면서 제대로 길을 확인했으니, 다음에는 다비암에서 능성고개까지 멋진 ‘팔공산 종주’를 한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성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회원님들, 그리고 갑작스런 일기불순으로 걱정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번 종주를 바탕으로 산과사람들 산방의 발전을 위해 좀더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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