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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인삼시배지 개삼터가 있는 불로장생 영약 자생지인 인삼의 고장 진악산

갈파람의별 2023. 11. 16. 14:57


진악산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충남에서 이름 있는 서대산 계룡산 오서산
다음으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인삼의 고장 금산(錦山)을 대표하는 진산이다
진악산 자락에 있는 개삼(開蔘) 터는
한국 최초의 인삼시배지이다

몇 번 오를 계획이었지만
번번이 못 갔었던 진악산이다
이번엔 기필코 ㅎㅎ 비예보가 있다
잠시의 망설임이었지만 ᆢ
아직은 잔뜩 흐린 날씨
수리넘어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산허리를 감아도는 등로
정비도 잘 되어있지만
낙엽 쌓인 길 정겹다


능선안부에 도착 오름이 시작된다
소나무숲길 좋기만 한데
비 올까 불안한 발걸음 바쁘게 움직인다


전위봉 뒤로 정상이 보인다


아기자기한 암릉길 혼산 중이라
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마침 비가 오기 시작 ㅠㅠ 미끄러울까
바위에 오르지도 못하고ᆢ


지나온 능선뒤로
마루금 너울들이 동양화 한 폭을 만들고 있다


얼굴바위를 지나고


관음굴로 가는 길
비가 오지만 이곳은 꼭 가봐야 할 곳이기에
아래 데크로 내려선다


절벽 위 관음굴이 보인다

1500년 전 강처사가 관음굴에서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 달라며 기도를 올리다가 잠이 들었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빨강 열매 세 개가 달린
풀을찾아 그 뿌리를 달여드려라 그 말을 듣고
강처사는 관음봉 절벽에서 풀을 찾아 그 뿌리
달여 드시게 했더니 어머니의 병이 나았단다
그리고 그 열매를 땅에 심었는데 그곳이
개안마을의 개삼(開蔘)터로 씨앗을
처음 심은 데서 유래하였다


관음굴 위 바위 꼭대기가 관음봉이다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가려다가
관음봉으로 오름길을 택한다
5m 직벽 로프를 이용 오르는데
미끄러워 위험천만 조심히 오르고


다시 밧줄 없는 3m 릿지길 오르니
관음봉 정상
봉우리 표시는 없지만
우중 주변 운치는 좋다


진악산 정상에 올라 하트 하나 ㅎㅎ


보석사방향으로 하산할 생각이다
비교적 이정표는 잘 되어있다


진악산이라는 이름은 나아갈 진(進)
즐거울 락(樂) 자로 큰 즐거움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태초에 큰 물난리가 났을 때
원래 배였던 진악산이 금산을 지나가다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서 산이 되었다고
하는  태초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주릉에 펼쳐지는
기암괴봉의 경관이 아름다우며
금산 쪽으로 깎아지는 낭떠러지는
장엄하기까지 하다


물굴봉이 보인다


뒤돌아본 진악산 산안개에 덮이고 있다


명품 천년송


물굴봉 정상에 오르고
하산이 시작된다


보석사 방향으로


능선에는 초겨울 산길
황량함보다 비에 젖은 낙엽길이
정 겹다


도구통바위를 지난다
절구를 도구통 경상도 지방의 방언인데
충청도 지방에서도 이런 용어를  썼나 보다
바위 모양이 곡식을 찧는 절구통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잇단 이정표를 지나고


정겨운길이지만
비가 내리는 낙엽길 미끄러움에
조심스럽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가을이가 반겨준다


보석사 은행나무
1990년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되었다
해발 300m 정도의 산록에서 자라며
보석사(寶石寺)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있으며
나무의 나이는 1,0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높이는 40m이고 가슴높이의 원줄기
둘레는 10.4m이다(인용)

조구대사가 제자 5명과 함께 육바라밀을
상징하는 뜻에서 6그루를 심은 것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라고 하며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길 때는 나무가 운다고 한다


보석사 경내에서

보석사
885년(헌강왕 11)에 조구가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 절 앞산에서 채굴한 금으로 불상을
주조하였기 때문에 절 이름을 보석사라고 하였다


보석사 주변 가을
단풍나무


전나무 숲길 도 즐겁다

보석사 의병승장비
의병승장비는 1592년(선조 25) 8월 18일에
치러진 제2차 금산전투에서 의병장 조헌과 함께
순절한 승병장 영규대사와 승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1839년에 금산 보석사 입구에 세운 비이다
비가의 오른쪽에는 의병승장비의 내용을
한글로 풀이하여 청동판에 새긴 영규대사
의선각비가 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에 일본경찰이 비각을
부수고 비문의 글자류 훼손하여 땅에 묻었으나
1945년 광복 이후에 다시 세웠다
1979년에 비각을 세웠고 1980년에 영규대사
국역비를 건립하였다(인용)


보석사 일주문


일주문 아래 주차장에
기다리고 있는 버스가 보인다

비교적 짧은 거리 산행
암릉길이 좋았지만 비 때문에
조망을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어쩌면 한번 더 오르고 싶은 산
금산의 산 진악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