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산행기록

제 2092차 산행 경주 부수산에서 오봉산까지

갈파람의별 2024. 10. 7. 20:09

부수산[570m], 부산[731m], 만병산[716m], 주사산[565m], 오봉산[632m]


위치 : 경북 경주시 건천읍
일시 :  2024. 10. 7.(월) 알피니스트 회원들과
날씨 : 흐리고 가끔 비
산행코스 : 건천성암사-복두암-(개척시작)부수산-부산성남문-673봉-711봉-부산-만병산-부산성서문-주사산(개척끝)-오봉산-여근곡

특징, 볼거리
경주 부산성(慶州 富山城)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산성
사적 제25호. 둘레 4,977m
주사산성이라고도 한다
경주의 서쪽에 있으며
높이 700m 정도의 오봉산 정상을 중심으로
골짜기를 둘러싼 포곡식 산성
삼국사기와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663년(문무왕 3) 정월에 축조했으며
산성 안에는 연못 1개 계천 4개 우물 9개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경주에서 대구로 통하는
전략의 요충지로서
선덕여왕 때 백제 군사가 이 산을 넘어
옥문곡까지 침입한 일이 있은 후에
도성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남산신성의 장창을
축조하면서 동시에 쌓은 것이다
이 성은 서쪽에서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경주의 외곽성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주사암(朱砂庵)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오봉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암자
주사사(朱砂寺)라고도 한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주암사라 하였다
신라시대의 한 도인이 이곳에서
신중삼매(神衆三昧)를 얻고
스스로 말하기를 적어도 궁녀가 아니면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귀신의 무리들이 이 말을 듣고
궁녀를 훔쳐 새벽에 갔다가 저녁에 돌려보내고
하였는데, 궁녀가 두려워하여
임금에게 아뢰니 임금이 가서 자는 곳에
붉은 모래로 표시하게 하고
이어 갑사에게 명령하여 찾게 하였다
오랜 수색 끝에 이곳에 이르러서 보니
단사의 붉은 흔적이 바위 문에 찍혀 있고
늙은 승려가 바위에 한가로이 앉아 있었다
임금이 그의 요괴하고 미혹한 행위를 미워하여
용맹한 장졸 수 천명을 보내 죽이고자 하였으나
그 승려가 마음을 고요히 하고 눈을 감은 채
한번 주문을 외우니
수만의 신중이 산과 골에 늘어섰으므로
군사들이 두려워 물러갔다
임금은 그가 이인임을 알고 궁궐 안에 맞아들여
국사로 삼았다고 한다
이 설화에 의하여 절 이름이 주사암이 되었는데
이 설화는 신인종의 주력을 강조하는 점이
두드러진다
국가유산으로는 2007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경주 주사암 영산전 석조삼존불좌상이 있다

여근곡(女根谷)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신평리에 있는
신라 때의 지명
여근곡은 선덕여왕의 지기삼사에 관한
전설 중의 하나에서 유래하는 지명이다 636년(선덕여왕 5) 여름에 영묘사 앞
큰 연못인 옥문지에 난데없이
두꺼비들이 모여들어 싸우는 일이 생겼다
모두 궁금히 여기는 가운데
선덕여왕이 해석하기를
두꺼비의 눈이 성난 것같이 생겼으므로
병란이 날 조짐이라 하고
알천과 필탄두 장군을 불러 2,000명의
군사를 주어 경주 서쪽에 있는
여근곡에 가서 백제의 복병을 치게 하였다

두 장군이 여근곡에 이르니
백제의 장군 우소가 거느린
500여명의 복병이 있어 쉽게 물리쳤다
이것은 옥문을 여근으로 해석하여
여근은 음이므로 남근이 여근 속으로 들어가면
토사한다는 음양설을 인용하여 해석한 것이다

여근곡의 위치는 자인에서 경주로 가는
길목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는 마곡산 밑의 회곡치가 있었던 곳으로
지형의 생김새로 보아 여근곡이었을 것으로 본다